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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 하면 떠오르는 아디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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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재길 지재권 전문 칼럼 니… (kandols@hanmail.net) | 작성일 2020년 11월 16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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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아디다스>

 

최근 코로나 확산세가 조금 진정되면서 미루어왔던 브랜드 및 IP컨설팅을 대면으로 현장에서 진행했다. 여전히 업계 관계자나 신진 디자이너들은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브랜드를 근본적인 기반으로 하는 패션관련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확실한 독점브랜드 즉 상표권도 하나 없이 무작정 사업을 무모하게 시작하고 중단하고 새로 고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단순히 통칭하여 ‘브랜드’라고 하면 등록된 상표권의 독점적 권리를 포함하는 상표부터 등록여부 상관없이 자신이 쓰고 싶은 상표나 로고를 일방적으로 만들어 쓰고 있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패션기업과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상표권 확보가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필수가 아닌 선택적 요소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섬유패션산업에서 브랜드를 빼고 제품과 물성 또는 품질만을 가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사업의 지속성이 보장되기는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결코 상표권 문제는 가볍게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이번 호부터는 세상을 움직이는 글로벌 패션브랜드로 성장한 몇 가지 브랜드를 정리하여 소개해 볼까한다. 

 

아돌프 다슬러의 어린 시절

1900년 독일 뉘른베르크 근교의 작은 시골마을인 헤르초게나우라흐에는 평범한 구두수선공이자 신발 공장의 봉제기술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내와 이제 갓 태어난 둘째 아들까지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이 수선공의 둘째아들인 아돌프 다슬러(Adolph Dassler)는 백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스포츠 및 패션 브랜드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아디다스(ADIDAS)’ 신화를 만들게 된다.

 

당시 아돌프의 애칭은 ‘아디(Adi)’였으며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던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에서 유년시절과 어린 시절을 보내며 어렵게 성장하게 된다.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어려서부터 가내수공업의 형태로 실내용 슬리퍼를 만드는 일과 섬유제품을 다루는 일을 온 가족들과 함께 해왔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돌프는 섬유가공과 신발제조 및 세탁 등의 다양한 제조방법과 기술들을 익히고 친숙해지게 된다.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

당시 독일의 신발산업이 하향세에 접어 든 탓에 아버지는 아들이 가난한 신발수선기술자 보다는 제빵을 하는 직업을 갖길 원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고 열정적인 운동선수이자 축구선수이기도 했던 다슬러는 불과 20세였던 1920년에 몇 번만 신으면 떨어져 버리는 운동화 대신 오래 쓸 수 있는 자신만의 튼튼한 트레이닝용 운동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에 처음으로 운동화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얼마 뒤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집으로 돌아온 형 루돌프 다슬러(Rudilf Dassler)는 아돌프 다슬러의 신발 제작하는 일과 사업에 동참을 하게 되었고, 둘은 1924년에 의기투합하여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Gebruder Dassler Schuhfabrik)을 설립하게 된다. 훗날 이 공장이 1949년에 아디다스로 이름을 변경하게 되는 전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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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인정한 러닝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슬러의 운동화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품이며 좋은 장비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평가와 평판으로 주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특히 그는 선수들이 사용하기 전에 제품을 손수 테스트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는 가장 좋은 제품만을 선수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그의 소신이자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지금도 아디다스의 근본철학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슬러 형제의 러닝화가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이었다. 당시 여성 러너인 ‘리나 라드케’가 그들의 스파이크화를 신고 800미터 여자 중장거리 종목에서 그동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땄다. 이후 1932년 LA올림픽에서 ‘아서 요나스’라는 선수가 그들의 스파이크화를 신고 100미터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그들의 스파이크 러닝화는 크게 이름을 알려지고 전 세계 많은 운동선수들이 원하는 제품이 된다. 

 

그 후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다슬러는 ‘지시 오언스’라는 선수에게 자신의 러닝화를 올림픽에서 사용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고, 제시 오언스는 이 스파이크화를 신고 4개의 육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4관왕으로 최고의 선수가 된다. 이때부터 많은 육상선수들이 그들의 운동화를 가장 원했고, 1939년까지 그들은 매년 20만 켤레 이상의 운동화를 판매하게 된다. 

 

이때 아디다스는 최초로 주물로 만들어진 고무 징이 달린 프레데터 축구화를 생산하였고, 아디다스의 상징이 된 3선 무늬가 적용되었다. 독일축구 대표팀은 아디다스의 새 축구화를 신고 1954년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게 되고 스크루방식의 징이 박힌 이 신발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아 선수들의 기술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디다스의 등장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형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심한 갈등으로 인해 힘들게 되고 급기야 1947년 그들은 서로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합의하게 된다. 형인 루돌프 다슬러는 그 다음해인 194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퓨마 슈퍼브릭 루돌프 다슬러(puma schhfabrik rudolf dassler)’라는 신발회사를 세웠고 이는 오늘날 ‘푸마(puma)’의 전신이 되었다. 

 

1949년 아돌프 다슬러는 남아 있던 50명 정도의 직원들과 자신의 애칭과 이름을 이용해 ‘아디다스(아디(Adi)와 다슬러(Dassler)의 합성어)’라고 회사의 이름을 바꾸고 정식으로 상표권을 등록하여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 글로벌브랜드 아디다스가 된 것이다.  아디다스의 사업은 다양한 제품과 소재의 개발을 통해 지속 발전했다. 그러나 1984년 창업자인 아돌프 다슬러가 사망하면서 그의 부인이 경영권을 승계 받았지만 불과 6년 뒤인 1990년에 부인마저 사망한다. 뒤이어 사업을 승계 받은 아들 또한 3년 뒤인 1993년에 사망하면서 아디다스는 시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기업인이던 ‘베르나르 타피에’가 쓰러져가는 아디다스의 주식을 대부분 인수하고 제품과 소재 개발, 공격적인 홍보 마케팅으로 아디다스를 혁신적으로 부활시켜 최고의 글로벌 패션브랜드로 만들어 놓는다.

 

위기 극복

브랜드나 기업의 운영과정이 항상 순탄할 수만은 없듯이 아디다스 역시 위기를 겪었다. 아디다스는 1960년대 중반부터 스포츠 의류를, 1963년부터는 공을 생산했고,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텔스타가 공식구로 사용된다. 이후 현재 거의 모든 월드컵 경기에서 아디다스가 생산한 축구공이 공식구로 쓰이게 되었지만 지나치게 스포츠 선수들을 위한 제품만 생산한다는 지적과 일반인들에게 외면을 받아 1980년대부터는 하락세를 걸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1990년대 새로운 경영인으로 다시 사업이 회복되면서 1997년 동계 스포츠용품 제조사인 살로몬을 인수하여 회사명을 ‘아디다스-살로몬’으로 변경했다가 2005년 살로몬을 핀란드의 아머 스포츠에 매각하면서 원명이던 아디다스를 다시 회복했다. 그 후 2006년 리복을 인수하고 2011년에는 파이브텐과 합병을 하였다. 아디다스의 신발이나 옷에는 아디다스 특유의 삼선(三線)이 들어있고, 아디다스 로고에도 이와 같은 자신만의 상표권 겸 디자인이 반영된다. 상표권의 확보와 철저한 브랜드 관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전력을 다하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All in or Nothing)’,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assible is Nothing)’ 등의 기업정신 아래 아디다스는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스포츠 브랜드가 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지금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 목표를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   ​ 

경력사항

  • 現) (사)브랜드마케팅협회 수석부회장
  • 現) (주)엘티씨앤엠 대표
  • 前) 세무법인 다현 전무
  • 前) 신한대학교 특허법률학과 겸임교수(법학박사)
  • 前) 경찰수사연수원, 법무연수원 지식재산범죄수사기법 강사
  • 前) 한국의류산업협회 총괄본부장
  • 前) 법무법인 한사명 소송실장
  • 前) 세일신용정보 법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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