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악(ENIAC)’. 아마 많은 분들이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오늘날 컴퓨터의 시조(始祖)로 불리는 애니악은 1964년 탄도를 계산하기 위해 군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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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정장의 脫 유니폼화에 대한 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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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인각 삼성물산패션부문 남성복사업… (fpost@fpost.co.kr) | 작성일 2019년 06월 10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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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악(ENIAC)’. 아마 많은 분들이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오늘날 컴퓨터의 시조(始祖)로 불리는 애니악은 1964년 탄도를 계산하기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이 역시 그 시작은 군사적 목적이었습니다.  

 

‘아르파넷(ARPANET)’은 최초의 컴퓨터가 발명되고 나서 5년 후인 1969년, 미국 국방부가 시범적으로 4개 대학을 네트워크(연결)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동서냉전이 한창 심하던 당시, 미국은 ‘핵전쟁이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는 네트워크 방법’을 연구했답니다. 그래서 아르파넷이라는 명칭도 해당 연구를 시작한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 연구국(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ARPA)의 약자인 ‘ARPA’와 ‘net’의 합성어입니다. 

 

그 후 80년대 말이 되자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했고, 1993년에는 최초의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MOSAIC)가 탄생했습니다. 그 후로도 인터넷은 획기적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우리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전쟁, 우리 역시도 1950년 발발했던 한국전쟁 당시는 물론이고 여전히 분단의 아픈 역사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이란 것은 다시 일어나면 안 될 비극이지만 역설적으로 인류 문명의 많은 것들이 전쟁에 대비한 ‘군사적 목적의 발명’에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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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 코트 트렌치 코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를 위해 만들어졌다. 트렌치 코트의 대표적인 특징인 오른쪽 가슴 윗부분의 덮개 장식, 어깨 견장, 허리 스트랩 모두 전시 중 편의를 위한 것이다. 이 트렌치 코트를 최초로 개발한 건 영국의 의류 제작자 존 에머리다.>

 

패션도 예외는 아닙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인 남보람 박사의 책 ‘전쟁 그리고 패션_샤넬을 입은 장군들’을 보면 우리의 패션이 얼마나 전쟁의 영향을 받았는지, 전쟁 후 어떻게 상품화되었는지, 그런 제품이 얼마나 많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모두 23가지의 복식(또는 시계 등 액세서리)가 전쟁에 의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식으로 발전해왔는지 얘기해줍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카디건 이라든지, 트렌치코트부터 바머 재킷, 피코트, 레이-밴, 넥타이 등의 유래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것도 군사적 목적으로 시작이 된거야?’ 라고 조금은 놀랐던 래글런 코트(Raglan, 우리는 흔히 라그랑이라고 하죠), 더플코트, 치노팬츠 등의 유래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건빵바지’라고 부르는 ‘카고팬츠’는 1938년 영국에서 군복과 근무복을 통일 시킬 필요가 있어서 발명되었고, 2차 대전을 통해 많은 군수품을 휴대할 수 있도록 미군이 개량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먹을 것이 없었던 우리 군인들이 카고팬츠에 달린 주머니에 건빵을 넣고 다니면서 먹었던 것이 오늘날까지 건빵바지로 불리는 이유라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정장으로서의 남성 슈트(SUIT)도 군복이 그 유래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캠브리지 영어사전에는 ‘슈트’의 정의가 ‘동일한 원단으로 만든 재킷과 바지 또는 재킷과 스커트’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세트(SET)로 입는 옷은 다 슈트이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남성정장으로서의 슈트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중세의 갑옷에서 처음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재킷은 그 후 아이템과 입는 방법이 변하면서 귀족들이 ‘나와 나의 계급을 나타내는 복장’으로 진화합니다. 자유롭고 화려하지만 중요한 자리에서 격식을 차려 입는 옷으로 발전하던 남성복은 19세기와 20세기의 전쟁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남성 슈트 형태가 굳어집니다. 

 

이후 캐주얼과 스포츠웨어가 확대되면서 중요한 자리에서 입는 예복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성이 격식 있는 자리에 나갈 때에는 슈트를 챙겨 입는 것이 예의처럼 여겨지고 있죠.  

 

우리나라에서 남성 슈트는 구한말, 서양에서 들어온 선교사들과 우리보다 일찍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인들, 소수 유학생들이 전파하기 시작했지만 70년대 이후 산업화가 시작되고 경제발전을 이야기할 수준이 되어서야 발전과 진화가 진행됐습니다. 

 

마침내 1980년대 초반 기성복을 생산하기에 이르렀죠. 그런데 맞춤양복의 시기를 지나 기성복이 생기면서 남성정장은 점점 ‘유니폼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획일적 문화를 강요해온 정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고 마침내 남성 슈트라면 ‘네이비’를 떠올리게끔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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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플 코트가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건 2차 세계대전 무렵 처음 영국 해군에게 보급되면서부터다. 방수 소재의 울 원단과 넉넉한 품, 그리고 쉽게 옷을 여밀 수 있는 토글 때문에 갑판 위의 옷으로 널리 환영받았다. >

 

삼성패션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성복 시장은 2009년부터 계속 감소와 증가를 되풀이 해 왔습니다. 남성복을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는 것처럼 정체상태였던 것입니다. 원가와 경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매출이 정체라는 건 기업의 수익이 해마다 줄어드는 구조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업계는 매년 이 문제로 고민을 했습니다. 

 

한참 신상품을 팔아야 할 올 봄에도 남성복 업계는 부진에 빠져있다고 했습니다. 원가를 줄이고 경비를 줄이는 하부구조부터 뭔가 다른 옷을 만들려는 상부구조까지 변화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10여년 넘도록 반복되어온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옷은, 그리고 패션은 사회와 문화를 반영합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복식들이 전쟁에서 유래한 것처럼 지금 우리가 입는 방식도 현재의 사는 방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엄혹했던 환경 속에서 진화했던 남성정장이 군복처럼 딱딱한 옷으로 변한 것도 시대의 산물입니다. 

 

‘1987’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광화문 빌딩 창문을 열고 색종이를 던지던 직장인의 옷차림은 모두 하얀 드레스셔츠였습니다. 그 당시는 정치적 환경이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미 선진국의 끄트머리에 선 지금도 대다수 직장인의 복장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름에 타이를 안 메고 셔츠차림으로 출근하게 하는 정도로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드는 남성복은 10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사가 안 되고 그래서 캐주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러면 매출이 올라갈까요? 설혹 매출이 올라간다고 한들 그게 진정한 남성복의 미래일까요?

 

이제 그만 유니폼을 만들고, 이제 그만 똑 같은 옷들을 찍어내야 합니다. 전쟁에서 비롯된 군복과도 같은 옷이 아니고, 바뀌고 있는 패러다임에 따라 나를 표현하는 남성복을 만들지 못한다면 지금의 매출부진을 만회하긴 어려울 겁니다. 

 

네이비로 대표되는 옷이 아니라 좀 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 브랜드만의’ 복식과 착장방식을 개발하지 않으면 점점 심화되는 양극화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무얼 어떻게 만들어내란 말인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시대가 낳은 걸출한 디렉터, 버질 아블로는 이야기했었지요. 샘플링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힙합과 디자인은 일맥상통한다고, 존재하는 것의 조합으로도 고정관념을 부수고 새로움을 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경력사항

  • 前)삼성물산 남성복 사업부 사업부장
  • (前)삼성물산 갤럭시/란스미어 BM
  • (前)삼성물산 엠비오/빨질레리 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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