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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우리는 80년 전을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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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FLUX 디렉터 (fpost@fpost.co.kr) | 작성일 2019년 11월 11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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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픈 역사


최근 이슈가 되었던 유니클로의 광고가 하나 있다. 논란이 된 장면은 한 스타일리쉬한 할머니에게 어린 디자이너가 “할머니는 오래전에 어떻게 입었어요?”라고 묻자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고 답하는 장면인데, 원래 광고에는 80년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은 없었으나 한국판 광고에 80년이라는 의역이 추가되었다. 

 

이 장면은 마치 80년 전 식민지 시절의 만행이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냐고 비아냥거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 한국인들의 강력한 반발에 유니클로는 한국에서 이 광고를 내렸다.

 

2. 아이리스 아펠(Iris Apfel)


광고 속 할머니는 대부분의 기사에 ‘패션 컬렉터’라고 소개되어 있다. 아이리스아펠은 아이리스 배럴(Iris Barrel)이라는 이름으로 1921년 뉴욕시티 퀸즈의 아스토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른바 ‘뼛속까지 뉴요커’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명문 대학인 NYU에서 Art History를 전공하고 후에 위스콘신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기도 한다.

 

부티크를 운영했던 어머니 덕에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패션을 가까이했었고, 젊은 시절 잡지사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조수로도 일했지만, 그녀의 커리어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다. 

 

칼아펠과 결혼한 이후 1948년부터 은퇴했던 1992년까지 무려 44년에 걸쳐 부부는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했는데, 잘 알려진 프로젝트로는 백악관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던 일이며, 둘의 손을 거친 대통령은 트루먼, 케네디, 닉슨, 레이건,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무려 9명이었으니, 커리어 내내 대단히 실력이 좋은 디자이너로 인정받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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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아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의 훌륭한 커리어도 그녀를 대변하지만, 사실 그녀의 존재가 더욱 빛나는 부분은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아이리스 아펠일 것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하이엔드 패션에 익숙했던 그녀였지만, 오늘날의 아이리스아펠은 그녀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남편인 칼과 함께 은퇴를 했던 1992년 이후부터 만들어진 셈이다. 

 

1993년부터 아이리스는 남편과 온 세계를 여행하면서 이국적인(서양인의 관점에서) 꾸뛰르 의상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고, 상류사회 파티(High-society parties)에 그것들을 입고 등장하면서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패션 디자이너도, 안나 윈투어 같은 업계 종사자도 아니었지만, 200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아이리스아펠을 주제로 그녀의 소장품들로 이루어진 전시를 열기도 했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이라는 그녀의 신분, 그리고 독특함을 추구하는 개성 덕에 그녀는 오랜 기간 뉴욕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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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eris Rogers의 티셔츠>

3. 케리스 로져스(Kheris Rogers)

아이리스에게 질문을 건네는 흑인 어린이의 이름은 케리스로져스이다. 그녀는 2006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10대 소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10살이 되던 해에 학교에서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을 경험한 후, 인종차별과 컬러리즘에 대항하기 위해 Flexin‘ In My Complexion라는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게 되고, 그녀의 이런 인스타그램 상에서의 활동을 미국 여러 매체들이 다루기 시작하면서 2017년 갑작스럽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 그녀는 인스타 팔로워 24만 명을 가진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물론 ‘케리스가 센세이셔널한 디자이너인가?’라고 묻는다면, 사실 그녀는 전형적으로 소셜 미디어가 만들어낸 ‘인스타스타’에 가깝다. 트렌디한 이름의 브랜드는 아직까지는 흔한 티셔츠에 큼지막하게 ‘Flexin' In My Complexion’라는 문구를 써넣은 것이 전부다. 

 

그녀의 옷은 예술적인 감성을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아마추어의 습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케리스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13살 어린이 디자이너라는 사실이고, 그녀는 이제 막 패션에 발을 들인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4. 유독 왜 한국에서만?

이제 다시 유니클로의 광고로 돌아오자. 이 광고는 유니클로의 겨울철 대표 아이템인 플리스 재킷을 선보이는 광고이며,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가볍고 따뜻하게’라는 문구를 내걸고 있다. 

 

이 광고에 아이리스아펠과 케리스 로져스가 기용된 이유는 꽤나 명확해 보인다. 아이리스아펠은 어린 시절부터 패션계에서, 그것도 뉴욕 상류 사회에서 언제나 주목받고 돋보였던 패션 아이콘으로 살아왔다. 

 

그녀는 뉴욕의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백인이자 NYU 출신이며,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9번이나 거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까지 경험한, 명실상부한 패션계의 셀러브리티인 셈이다.

 

반면 케리스 로져스는 뉴욕이 아닌 LA의 아주 평범한 집안 출신 흑인으로, 그녀가 패션계에 발을 들인 것은 부모의 영향도, 그녀의 재능 때문도 아닌, 차별 때문이었다. 13살 소녀는 패션을 차별에 맞서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목받게 되었으며,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케리스에게 아이리스는 누구보다 닮고 싶은, 선망의 대상일 것이다.

 

그런 배경을 알고 나면, 케리스가 아이리스에게 “당신은 13살(현재의 케리스의 나이)때 어떤 옷을 입었나요?”라고 묻는 심리는 매우 자연스럽다.

 

존경하는 사람이 내 나이 때 어떤 일을 했을까? 라는 질문, 우리가 모두 언젠가 한 번쯤은 해보았을 질문이지 않은가? 그리고 아이리스아펠의 나이는 98세임을 고려할 때, “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그렇게 오래전 일을 기억할 수는 없어)”라는 그녀의 대답 역시 납득이 가능하다.

 

즉, 이 광고의 요지는 ‘80년 전’이라고 해석된 부분에 국한해서 해석하기보다는, 실제로는 85세 나이 차이가 나는 두 명의 패셔니스타(한 명은 떠오르는, 그리고 또 한 명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가 서로의 배경의 경계를 넘어 모두 가볍고 따뜻한 유니클로 플리스로 ‘대동단결한다’는, 아주 심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유니클로는 왜 유독 한국에서만 ‘80년이라는 표현을 굳이 넣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역시 간단하다. 미국에서 아이리스와 케리스는 모두 이미 너무 유명한 인물들이라 그녀 둘이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둘 사이의 갭이 엄청나게 크다는 전제는 미국인들에겐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두 사람의 인지도는 미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데다, 아이리스아펠은 98세로 보기에는 너무 젊어 보이는 바람에 ‘80년도 더 된 일’이라는 숫자를 통해, 그 둘이 사실은 엄청난 나이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이 광고를 다시 본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이상할 것도, 오해할 부분도 없이 떠오르는 스타인 케리스 로져스와 뉴욕 패션의 아이콘인 아이리스아펠이 함께한, 훌륭한 아이디어의 광고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5. 동방의 전투민족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광고의 진짜 의미가 무엇이었건 간에,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광고가 우리로 하여금 불행했던 과거와 관계된 불쾌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 2년 전에 이 광고가 나왔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겠지만, 하필이면 유니클로가 미운털이 박힐 대로 박힌 상황에서의 광고였기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데다, 한국인들의 예민한 반응이 다소 오해가 있었다고 해도, 이에 대해 ‘대단한 상상력이다’라고 조롱하듯 대응한 유니클로의 태도 또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광고는 현재 삭제된 상태이고, 유니클로 또한 앞으로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을 완전히 접을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신중한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이다. 자고로 동방의 전투민족 한민족들은, 한 번 정 준 대상에게는 간이라도 떼어 주지만, 반대로 한 번 정 뗀 놈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 그들은 어쩌면 몰랐었는지도 모르겠다.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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