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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한국인이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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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fpost@fpost.co.kr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UX’ 디렉터) | 작성일 2020년 03월 23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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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첫 해외여행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1994년이었다.

 

1994년, 로스앤젤레스

모교의 LA 지역 동문회의 초청으로 난생 처음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게 되었다. 마침 월드컵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축제 분위기까지 겹쳐서 LA는 거대한 용광로 같았고, 난생 처음 ‘선진국 맛’을 봤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교복에 까까머리를 하고 기껏해야 방과 후 오락실을 가거나 농구를 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던 고등학생의 눈으로 본 ‘미국’이라는 나라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좋아 보이는 것 투성이었다. 

 

그래서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부디 미국인으로 태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런 나라였다. 물론 새벽에 코리아 타운에서 된장찌개를 먹다가 총소리를 들었던 끔찍한 경험은 제외하고 말이다. 

 

시간은 흘러 2000년. 군복무를 마친 필자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2000년, 유럽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기도 했고,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던 유럽이었기에 군복무 기간 내내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만을 꿈꿨던, 당시로서는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이자 버킷리스트 0순위였던 유럽여행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내내 함께 했던 것은, 폐허에서 다시 시작한 한국과는 달리 수 백 년 된 건물들조차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거리, 작은 기념품 하나조차 허투루 만들지 않는 장인정신, 소박하지만 세련된 사람들의 옷차림, 그들의 여유로운 삶의 태도와 그런 삶을 뒷받침 해주는 사회 시스템 등이었다. 여전히 투박하고 모든 것이 촌스러웠던 당시 대한민국과 하나부터 열까지 비교되었다. 

 

하필이면 로마를 여행하던 시기에 ‘성모수태일’이 겹치면서 로마와 바티칸 어디에도 사용가능한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어 ‘지릴 뻔’ 했던 불편함이야 있었지만, “Do Rome in Rome”이라 하지 않았던가.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 하건만, 그조차도 하필 로마에서 소변이 마려웠던 필자의 잘못이지 아니한가.  

 

2006년, 뉴욕

이전의 해외여행들을 통해 깨달은 것은, 우리가 세계에 바라는 것과는 관계없이, 세상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존재감이 거의 없는 나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조금 달라졌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유학생활을 통해서였다. 물론 한국에 무지한 미국인들이 “북한사람이야, 남한 사람이야?”라고 묻는 질문은 여전했지만, ‘올드보이’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는 친구부터 일식과 달리 한식은 건강한 음식이라 좋아한다며 한식을 자주 먹는다는 친구까지 있었다.

 

미국의 주류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마치 한국인들이 ‘아제르바이잔’이나 ‘죠지아’같은 나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듯,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인이면 나카타의 나라에서 왔네? 곤니치와!”라는 말을 듣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지 아니한가. 

 

격세지감이란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로서 그만큼 필자는 놀라웠음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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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에서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 의료진에 샌드위치를 보냈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제공>

 

그리고 2020년, 대한민국

난생 처음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미국에 발을 내딛던 때로부터 26년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지는 10년이 지난 2020년을 살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은 물론 신진국으로 여긴 나라들마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맞서는 모습에서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한 때 세상을 호령했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언제까지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대상으로 여겨온 유럽의 어떤 섬나라의 총리는, 이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을 수 없다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다.

 

우리가 ‘천조국’으로 치켜세워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나라로 여기며 ‘대한민국’이 생긴 이후로 끊임없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선진국들의 선진국’은 이제야 대한민국식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고, 하원의원은 청문회 도중 한국에 가서 검사를 받고 싶을 정도라는 실토를 하고 있다. 

 

우리는 작년의 BTS를 통해서, 또 바로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해 대한민국이 서있는 위치가 많이 달라졌음을 충분히 깨닫기는 했다. 물론 대중음악과 영화는 전체 대중문화에서도 압도적으로 메인 스트림의 정점에 있는 양대 문화 콘텐츠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세계적 차원’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의, 조금 과장하자면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BTS의 명성과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상 수상과는 또 다른 성과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한국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적으로 존중할 가치가 있는 나라’에서 ‘닮아야 하고 따라야 할 나라’로 또다시 자리가 바뀌었다. 작년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던 젊은이 몇 명이, 또 얼마 전에는 천재적인 감독과 훌륭한 배우들이 무언가를 보여줬고 세상의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면, 지금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인 셈이다. 

 

평소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술을 들이 붓고 밤을 새워 노래를 부르고 놀기 좋아하며, 뭐든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 견디는 성격에, 심지어는 매운 청양고추를 무려 고추장에 찍어먹는 괴상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반면 지금은 전 세계를 뒤덮은 미지의 바이러스에 맞서 질서정연하고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가 매일 언론을 통해 보내주는 찬사의 메시지들은 결코 립 서비스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그런 칭찬을 들을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고,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은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던, 그래서 늘 부러워하고 따라잡고 싶었던 나라들 중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일을 두 달 동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해외 언론을 훑을 때마다, 그들이 ‘Korea’를 언급할 때 언제나 존재감이라곤 거의 없이 아직도 북한과 폭탄을 쏴대며 전쟁하는 나라로, 아시아 어딘가에 붙어있는 후진국으로만 여겨지던 얼마 전까지의 대한민국을 생각해본다. 

 

이제는 “두유 노 손흥민? 두유 노 김치?”를 우리가 물어봐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야말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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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과 해병대는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대구·경북지역 주민들을 위해 

성금을 모아 기부했다. photo 해군본부>

 

“日本人でよかった(일본인이라서 다행이야)”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꽤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는 ‘日本人でよかった’라는 밈(Meme)이 있다. ‘일본인이라서 다행이야’라는 뜻의 이 문장은 주로 한국과 중국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건들에 대해 비아냥거리듯이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우위에 있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저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라고 읊조리는 뉘앙스의 문장이다. 

 

실제로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2CH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밥 먹듯이 사용되었던 문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2011년에는 일본 전국의 8만 여 개 신사를 포괄하는 신사본청에서 애국의식을 장려하기 위하여 이 문장을 포함한 포스터를 제작해 붙이기도 했다. 

 

한 때는 모든 문화가 동경의 대상이었던 일본. 그리고 언젠가부터 신기하리만치 후져 보이기 시작했던 일본이 코로나 정국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철저하게 후진적이다. 

 

질병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 그 국가의 거짓말을 못 본 척 해주고 오히려 포장해주는 언론, 그런 거짓말과 위선에도 불구하고 촛불 한 번 들고 일어난 적이 없는, 아직도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아베에게 표를 주고 있는 국민들까지, 지금의 일본은 여전히 훌륭한 문화적 콘텐츠와는 별개로, 너무 후지다. 

 

국가는 막아줄 수가 없으니 알아서 병에 걸려 죽거나 살거나 하라는 저쪽 섬나라 미치광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대통령이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이니 제발 집에 있어달라고 호소하는데 민주주의를 왜 침해 하냐면서 광장으로 놀러나가는 말 안 듣는 국민들로 가득한 그 옆의 나라를 보고 있자니, 중국만 틀어막으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가 사망자가 2천명을 넘겨버린 어떤 나라를 보고 있자니, 이 와중에도 열심히 올림픽 홍보에나 힘을 쏟고 혐한에만 열을 올리는 슈퍼마리오 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한국인이라 참 다행이다!” ​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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