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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그대들이여, 변화의 바람이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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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UX’ … (fpost@fpost.co.kr) | 작성일 2020년 04월 13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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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은 1914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돼 독일의 항복으로 1918년에 끝났다. 이 기간 동안 이탈리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서양 열강들이 전쟁에 참가했으며, 4년 4개월간의 전쟁 기간 동안 무려 1,000만 명이상의 인명이 살상됐다고 한다. 

 

전쟁과 질병이 바꾼 패션문화

이 기간 동안 유럽인들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데, 의복형태의 변화 역시 눈에 띄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인들, 특히 여성들의 복식은 중세시대 이래로 쭉 내려오는 기조(드레스 중심)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다만 크고 작은 디테일의 변화들만이 ‘유행’이라는 차원에서 발생할 정도였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인류적 차원에서의 사건은 의복의 실루엣 자체를 완벽하게 바꿔버렸다. 

 

전쟁에서 사망한 남자들을 대신해 거친 일도 해야 했던 여성들은 바지를 겉으로 입기 시작했고, 치마의 길이는 움직이기 편하게 짧아졌다. 의복 뿐 아니라 장신구나 헤어스타일 역시 다소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장식적이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모던해졌고 실용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참고로 가브리엘 샤넬이 첫 부티크(boutique)를 내고 패션계의 스타로 떠오른 것도 이 무렵이다. 샤넬이 늘 추구했던 스포티함과 절제된 아름다움을 고려해보면 전쟁이 여성들의 취향 자체를 얼마나 크게 바꿔 놓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로부터 20여년 후인 1939년부터 19 45년까지 또다시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 때의 양상과는 달랐다. 당시까지만 해도 파리로 대표되던 패션의 중심지가 뉴욕으로 옮겨가면서 패션의 헤게모니가 바뀌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미국식 스포츠웨어가 헐리우드 영화와 함께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나 질병은 사람들의 의식과 라이프스타일을 뒤흔들고 때로는 그로 인해 판 자체가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우한폐렴’ ‘코로나’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 19’ ‘코비드 19’. 어떤 이름으로 이 바이러스를 일컫든 간에, 원더키디가 자가용 보드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거라고 상상해온 2020년 초에, 중국에서 야생 박쥐를 뜯어먹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만 알려진 어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됐다.(하늘을 나는 보드와 야생 박쥐라니 이 얼마나 절묘한 대조인가!) 

 

세계적인 재앙, 판을 뒤흔들다

국내에서도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겨우 한 달 반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 바이러스는 100년 전의 스페인 독감 이후로 최악의 인류적 재앙으로 기록될 만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어느 나라 총리는 이 병을 막을 길이 없어 놔두기로 했으며 그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것이라고 뻔뻔하게 공언하더니 자기가 병에 걸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런가 하면 남미 어느 나라에는 길거리에 시체가 방치되어 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고, 바다 건너 옆 나라는 ‘마스크 두 장’으로 세계적인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요즘 세계인들은 두 달 가까이 어제 몇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사망했는가를 확인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해서 오늘 하루 몇 명이 또 감염되었고 사망했는가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치는 일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는 미국마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앞에서는 처절하게 허둥지둥 대는 꼴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경기가 최악이니 뭐니 해도, 마스크가 매진이고 휴지가 매진이고 손세정제가 매진이라는 해외 뉴스들 속의 비참한 상황에 비하면 단지 새로 나온 닌텐도 게임기만이 매진이라는 한국은 오히려 평화로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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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photo 청와대>

  ​

이런 상황에서 패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지난 3월 예정이었던 서울 패션위크는 물론이고 상하이, 도쿄 컬렉션의 행사와 하반기로 예정돼 있던 남성복 컬렉션과 오뜨 쿠투어 컬렉션마저 취소가 됐으니 할 이야기도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구하는 수퍼 히어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매일 아침마다 접하면서 이른바 ‘국뽕 치사량’을 날마다 흡입하고 있다. 이때 죽고 사는 문제와 먹고 사는 문제를, 또 한국으로만 한정 짓자면 국회의원 선거까지 겹쳐있는 요즘, 누가 맘 편히 패션이니 유행이니 트렌드니 하는 따위에 관심이나 가지겠느냔 말이다. 

 

다만, 필자는 요즘 매일 전해지는 해외 미디어들, 그것도 작은 도시의 쩌리 방송국이 아니라 고매하신 미국, 유럽 선진국들의 온갖 메이저 언론들이 쏟아내는 ‘Korea’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판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세계 속의 한국

사실 대한민국은 우리에겐 몹시도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이름이지만, ‘세계’ 속에 놓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은 유사이래로 단 한 번도 주목받았던 적이 없는, 기껏해야 전쟁을 딛고 이제 좀 먹고 살만은 해진 아시아 어딘가에 붙어 있는 만년 2등 국가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한국은 삼성, LG같은 훌륭한 기업을 보유한 국가이고 세계 10위권의 무역규모를 자랑하는, 결코 작지 않은 나라라고 부르짖어 본들 서양인들의 눈에 비춰지는 한국은 미국 드라마 속에서 백인들의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정성스레 발라주는, 시키는 일은 성실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우리는 BTS 열풍과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으로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던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양 문화의 거대한 벽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아시아인으로서의 최고점’은 일본이 쌓아올린 딱 그 위치에 불과했다. 말 잘 듣고, 나름대로 영특하며, 서양인 앞에 무릎 꿇기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그래서 데리고 있으면 아무튼 도움은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이것이 수백 년간 서양인들의 머릿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힌 ‘아시아인’의 단면이고, 그 외에는 ‘중국인’으로 대표되는 온갖 부정적인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미개한 이미지가 전부였던 셈이다. 

 

그런 ‘동양’, ‘아시아’에 대한 서양 문화의 우월감은 물론 전쟁의 승리에 기인한다. 1,200년대 칭기즈칸이 유럽을 뒤집어엎고 다녔다는, 그래서 검은 머리의 말 탄 이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겁에 질려 살려만 달라고 빌었다는 그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도 물론 있었다. 그 후로 수백 년간 서양은 동양과의 경쟁에서 항상 이겨왔고 가장 최근의 치욕적인 ‘핵폭탄 두 발’은 서양과 동양의 계급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시켜준 상징적인 사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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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트럼프 대통령>

 

“나를 따르라”

언제나 그들은 옳고 아시아는 틀리며, 언제나 그들은 위에 있고 아시아는 그 아래에 있어야 하며, 언제나 세계를 끌고 가는 것은 그들이고 아시아는 그들을 돕는 역할 정도라는 서양인들의 ‘상식’은 지금 대한민국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있다.

 

한국이 수 달째 진지하고 냉정하게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동안,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한참 위에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어온 그 ‘선진국’들이 보여주고 있는 황망한 촌극들은 우리의 생각을 바뀌게 하고 있는 동시에 그들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누가 뭐래도 전 세계는 대한민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한국은~”으로 시작하는 뉴스를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고 한국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나를 따르라!”를 우리의 조국이, 또 우리가 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기만 해도 벅찬 현실이지 않은가. 

 

뉴스에서 프랑스의 아나운서가 한국인 특파원에게 “한국 입장에서 프랑스의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 미국이, 영국이, 프랑스가 단 한 번이라도 한국인에게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 같아?”라고 물었던 적이 있던가. 그런 질문은, 아래쪽에 있는 사람이 위에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언제나 그렇게 묻는 쪽은 우리였다. 

 

“두유 노 김치?” “두유 노 박지성?” “두유 노 싸이?”

어떻게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우리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서 언제나 우리가 먼저 물었다. 피식 웃으면서 마지못해 “당연히 알지”라는 그들의 반응에 마치 선진국 시민이라도 된 것 같은 뿌듯함에 벅차올랐던 것은 우리였지 않은가. 

 

최근에 어디선가 “서양의 아시아에 대한 모든 편견은 일본이 쌓았고, 한국이 깨부수고 있다”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아시아인은 나약하고, 아시아인은 순종적이며, 아시아인은 리드할 줄 모르고 따라갈 줄만 아는 저열한 인종이라는 서양인들의 편견. 그것이 하나하나 깨져가고 있다는 느낌, 필자만이 받고 있는 인상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전설적인 록밴드 스콜피온스의 명곡 ‘Wind of change’의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I follow the Moskva Down to Gorky Park   

나는 모스크바의 고르키 공원으로 걸어가죠

Listening to the wind of change            

변화의 바람을 들으며

An August summer night soldiers          

8월의 여름밤 군인들이

passing by                                 

지나가죠

Listening to the wind of change            

변화의 바람을 들으며

The world is closing in                     

세계는 모여들고 있어요

Did you ever think                         

생각해 보았나요

that we could be so close like brothers    

우리가 형제처럼 아주 가깝게 될 수 있다는 것을

The future’s in the air                     

미래는 확실하지 않아요        

I can feel it every where                   

나는 어디에서든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을

Blowing with the wind of change           

느낄 수 있어요​

앞으로 뒤바뀔 세상을 향해 불고 있는 한국발 바람을 여러분은 느끼고 계신지?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불편한 지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바로 코앞에 불어 닥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면서, 오랜 기간 영국이 그리고 미국이 그래 왔듯 대한민국이 맨 앞에서 세계를 이끄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조금만 더 견뎌내시기를 바란다.   ​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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