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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교복 혹은 AV코스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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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 (fpost@fpost.co.kr) | 작성일 2020년 06월 22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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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배재고등학교 111회 졸업생이다. 배재 고등학교는 현재 강동구에 있지만, 졸업식은 이사 전 위치해 있던 정동 교회에서 진행된다. 오래된 교회이기도 하고, 워낙 운치 있는 덕수궁 돌담길 근처이기에 아직도 졸업식 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하다. 

 

우리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어느 날, 한 고등학교 친구가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주었는데, 식장이 ‘정동 프란치스코 성당’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식이 열리는 토요일, 예전 졸업식 기억만 하면서 그 근처 어디겠지 하고 정동 교회 정문 앞에 도착했다. 한 점잖은 분께서 입구에서 뭔가를 나눠주고 계셨는데, 그 분께 여쭈었다. 

 

“결혼식장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그 분은 살짝 놀라면서 되물으셨다. 

“결혼식이요? 오늘은 결혼식이 없는데… 날짜를 잘못 아신 것 아닐까요?”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오늘인데요.” 나는 그 분께 청첩장을 보여드렸고, 그 분은 “아~”하시면서, 식장은 정동 교회가 아니라 정동 프란치스코 성당(현 성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고, 더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매우 정중하고 친절한 자세로 알려주셨다.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졸업식을 이 교회에서 해서 막연히 여기라고만 생각했었나 봐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성당 쪽으로 방향을 바꾸던 그 순간, 그 분은 마치 큰 어떤 것을 놓쳤을 때의 목소리로 “잠시만요!” 하시더니 이렇게 물으셨다. 

“혹시 배재 고등학교 졸업생이신가요?” 

 

깜짝 놀라서 “아,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되묻자, 그 때 까지만 해도 누가 봐도 교회 전도사님 혹은 권사님 같은 외모에 환한 미소로 교회에 들어가는 신자들에게 주보를 나눠주고 계시던 태도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시고 차렷 자세를 하시더니 절도 있게 한 손을 내게 내밀면서 이렇게 외치셨다. 

 

“반갑다. 난 8*회, 강**라고 한다!” 

배재 고등학교에는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이 하나 있다. 선배와 후배가 만나면,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함께 우렁차게 교가를 부르는 것이다. 

선배가 “배~~~~재교가!!!”라고 선창하면, 후배는 “허이!”하면서 합을 맞춰주는 것이 룰이고, 심지어는 특정 자세까지 있다. 토요일, 친구의 결혼식에서 난생 처음 보는 한 성도님이자 까마득한 선배와 만나 팔을 우렁차게 휘저어가며 교가를 불렀던 아련한 추억.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무궁하도록 / 랄랄랄라 씨스뿜바 / 배재학당 씨스뿜바 / 랄랄랄라 씨스뿜바 / 배재학당 씨스뿜바~~~”(1절이 끝나면 100%의 확률로 “한 번 더!”가 외쳐지며, 일반적으로는 2회 반복, 술자리라면 테이블 위에 놓인 소주병 수만큼, 혹은 무한대로 반복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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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에서 첫 교복은 1886년의 이화학당에서 입기시작 했던 치마저고리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이화학당 저학년생 모습.>

 

교복의 역사와 찬반 의견

대한민국 역사에서 첫 교복은 1886년의 이화학당에서 입기시작 했던 치마저고리로 알려져 있고, 남학생용 교복의 역사는 1898년, 배재학당에서 시작됐다. 

 

물론 교복의 형태는 지금과 달라서 도포 차림이었으며, 일제강점기부터는 가쿠란(学ラン)이라는, 일본식 교복이 도입되어 1980년대 초까지 유지됐으며, 요즘 같은 블레이저 형태의 교복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다. 

 

학생들의 교복 착용에 대한 찬반 의견은 아마도 피자의 파인애플 토핑이나 ‘부먹’ ‘찍먹’ 논쟁  만큼이나 오랫동안 어른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일 것이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교복 착용이 학생들의 신분을 보여주기 때문에 탈선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의견에서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상대적으로 의상에 대한 지출 부담을 줄여준다는 의견, 그리고 학생들의 차림을 단정하게 할 수 있다는 의견까지 뭐 나름대로의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의견들은, 교복은 학생들의 몰 개성화에 일조하고 획일화시킬 뿐이라는 의견과 일본 제국주의의 산물로서 청산의 대상이라는 의견 등이다. 물론 각각의 입장에서 나름대로의 논리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개똥철학’을 학생들에게 내세우기 전에, 과연 한국에서 교복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복? 생활복? 

교복은 앞서 언급했듯이 영국 사립학교에서 시작됐다. 

즉, 교복은 사립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신분 혹은 소속을 드러내는 수단이었고, 그로인해 자신들을 다른 그룹과 차별하고 동시에 특별한 신분을 가진 그룹이라는 소속감을 고취시키는 역할도 했던 것이 교복의 본질인 셈이다. 

 

또한 그런 특별한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고, 전통에는 항상 형식이 함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형식들은 항상 ‘합리성’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곤 한다. 예를 들어보자. 

 

설이 되면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사람들 열에 아홉 이상은 버선 대신 평소에 신는 흰 양말을 신고 있고, 태연히 구두를 신거나 심지어 농구화를 신고 있기도 한다. 또 카페 종업원이 상의는 유니폼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긴 하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그들의 하의와 신발은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인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형식을 갖추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고 돈이 적게 들기 때문이며 귀찮기 때문이다. 즉,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의 교복차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일본에 가면 아침마다 란도셀을 메고, 똑같은 흰 무릎길이 스타킹에 검은 구두를 신고,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을 마주한다. 여고생들도 가방 모양은 다르지만 비슷한 길이의 치마, 똑같은 색깔과 길이의 양말, 그리고 검은색 혹은 짙은 밤색 구두를 신고 있다. 이런 교복 차림새에 대한 ‘형식’은 다른 나라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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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 열에 아홉은 버선 대신 평소에 신는 흰 양말을 신고 있고, 태연히 구두를 신거나 심지어 농구화를 신고 있기도 한다.>

 

형식 무시한 한국 교복

그런데 한국의 학생들은 이런 형식을 깡그리 무시한 교복을 입고 다닌다. 교복에 농구화를 신거나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교복 컬러와도 맞지 않고 학교의 상징 컬러와도 아무 관계없는, 그리고 교복과 어울리지도 않는 오리털 점퍼를 걸치고 다닌다거나, 교칙에 어긋나게 치마의 길이부터 모양을 자기 취향대로 뜯어 고치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교복 디자인은 한술 더 뜬다. 학교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거나 그 학교가 떠오르는 모티브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롤리타 콤플렉스를 마음껏 자극하겠다는 의도가 눈에 선한, 마치 일본 AV 속의 교복 코스튬 같은 천박하고 괴이하고 악랄한 디자인들이 판을 친다. 

게다가 교복의 퀄리티는 눈물 없이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는 수준이다. 

 

무늬를 어느 정도 맞춰주는 것이 기본이지만 완벽에 가까울 만큼 제멋대로 만든 플릿 스커트는 차치하고, 근본도 없는 정체불명의 타탄으로 만든 데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싸구려 폴리에스터 원단을 사용해서 만든 바지와 치마는 입으면 입을수록, 의자에 비비면 비빌수록, 다리면 다릴수록 80년대 사이버 펑크 느낌 물씬 나는 번쩍거리는 싸구려 광을 낸다. 

 

셔츠나 블라우스 원단은 공장 근로자용 작업복과 흡사해서 외부 충격에는 강하지만 땀을 배출시키거나 공기가 잘 통하게 해주는 기능 따위는 전혀 없어서, 특히 호르몬 분비가 폭발하는 사춘기 남학생들의 경우엔 학교가 끝날 때쯤이 되면 온몸에서 악마의 겨드랑이 냄새와 비슷한 향을 마음껏 내뿜고 다니는 본의 아닌 매력발산을 하게 된다. 

 

교복 착용이 학생들에게 들어가는 옷값을 줄여주기 때문이라면, 학생들이 스스로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옷을 사 입도록 하면 된다. 

교복 착용이 빈부격차로 인한 위화감을 줄여주기 때문에 교복착용에 찬성하는 분들에게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이런 물질 만능주의적인 시각은 잘못된 사고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고, 올바른 사고를 가르치기 위해 교육이 존재하고 그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학교’다. 

 

교복을 입는 이유

학생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고, 결과적으로 가진 물질의 양으로 계급을 나누고 차별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해결방법이지, 교복을 입혀서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마치 지하철 성폭력을 막겠다며 여성 전용 칸을 만들어서 또 다른 불평등을 조성하는 꼴밖에 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교복은 도저히 왜 입어야 하는지 단 한가지의 근거조차 명확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천 조각에 불과하다. 

 

애초에 학교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의 존재감도 없고, 제복으로서의 권위나 전통은 물론이며 ‘옷’으로서의 기능성도, 디자인성도 없으며, 교복착용에 대한 명분조차 결국은 철저하게 어른들의 입장만을 대변하는데 불과한 ‘교복’을, 이제는 불태워버릴 때이지 않을까?​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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