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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스타일리스트’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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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 (haklim.lee77@gmail.com) | 작성일 2020년 07월 27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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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필자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던 한 럭셔리 브랜드의 본사.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뜰리에 내부에는 적막이 흘렀다. 

 

2009년 뉴욕 컬렉션

다음날은 뉴욕 패션 위크 날이었고, 이미 철야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큰 행사를 실수 없이 치러내기 위해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던 중, 갑자기 한 편에서 누군가가 날카롭게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원래 패션 위크가 다가오면, 적어도 디자이너가 피날레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 스텝들은 모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게 마련이고, 하다못해 야식으로 먹는 케밥 냄새조차 말다툼의 원인이 되고도 남을 정도이니 그러려니 하고 다시 맡은 일에 집중을 하던 중이었는데, 누군가가 맞받아치면서 싸움은 점점 커져서 일하던 모두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싸움은 예민해진 직원들끼리의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라, 브랜드를 만든 대표와 스타일리스트의 싸움이었다. 스타일리스트는 정직원이 아닌 패션 위크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고용된 프리랜서로, 어떤 식으로 계약을 맺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출근하지는 않았다. 패션 위크 3일 전부터 특정 시간에 아뜰리에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그 날은 세 번째로 그녀를 본 날이자 마지막 근무일이었을 터. 

 

당연히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한 것은 브랜드를 디자인한 대표였을 것이기에,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서로 핏대를 올려가면서 저렇게까지 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동안 지켜본 결과, 그 싸움은 대표가 지정한 특정 룩과 액세서리의 조합들을 스타일리스트가 갈아엎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지정한 대로 입히라는 대표. 이 컬렉션의 룩을 만드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이고, 내가 지정한 대로 입혀서 무대에 세우겠다는 스타일리스트. 그들의 싸움은 30여 분이나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모든 최종적인 결정은 스타일리스트의 고집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기를 고용한 사람 앞에서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저 사람도 대단하고, 자기가 고용한 사람의 말을 결국은 듣는 디자이너도 대단하다고 느꼈었다. 

 

그리고 행사가 마무리된 이후의 인터뷰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최고의 디자이너,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며 치켜세워주는 요상한(?) 장면에 ‘오, 아메리칸 스타일’하며 혀를 끌끌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인플루언서의 민낯

한 유명 스타일리스트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유료광고(PPL)임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아 논란이다. 급기야 이 행위에 대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으로 번졌고, 해당 스타일리스트는 사과 방송까지 내보냈으나 여론은 여전히 차갑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인플루언서’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플루언서’란 좁게는 소셜 미디어에서 수십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SNS 유명인’, 조금 더 폭넓게는 장르에 관계없이 사회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뜻하며, 유사한 단어인 기존의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를 대체하는 신조어이다. 

 

여기서 문제는 ‘인플루언서’는 단순히 ‘팔로워를 많이 가진’ 사람을 뜻할 뿐 특정 분야에서의 권위나 자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는데 있다. 

 

예를 들면 ‘먹방’으로 유명한 인플루언서는 먹는 모습이 재미있거나 맛깔스러울지는 몰라도, 그가 ‘요리’라는 전문 분야에서 맛을 평가하고 수준을 논하거나, 누군가를 가르치고 조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인물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인플루언서’라는 용어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평가하고 규정하는 자리는 소위 ‘인플루언서’들이 꿰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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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영화의 철학적인 의미와 미학을 지루하고 길게 수업하듯 늘어놓는 교수님의 50분짜리 평론보다는, 약간은 상스러운 육두문자를 마구 날리며 현란한 짤방과 적절한 자막으로 정신없지만 재미있는 7분짜리 유명 유튜버의 영화 추천 영상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본다. 

 

요리 전문가들의 추천 요리보다는, 맛있게 먹고 많이 먹는 인플루언서가 맛있다고 하는 음식이 맛있다고 믿는다. 디자이너들의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옷보다는, 얼굴이 알려진 래퍼가 만든 옷을 더 선호한다. 

 

앞서 말한 문제가 됐던 유튜브 채널을 우연히 몇 달 전에 보게 됐다. 몇 편의 영상 속에서 인플루언서는 고가의 가방을 들고 한다는 말이 “너무 예쁘지 않아요?”라는 스타일리스트와는 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몇 마디가 전부였을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미디어에 등장한 ‘전문가’로서의 그녀 모습 역시 ‘한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는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물론 ‘인플루언서’의 등장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수십년 전에 받은 박사 학위 하나를 가지고 평생을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도 되는 것처럼 꼰대질을 일삼는 일부 엘리트보다, 단지 그 분야가 좋아서 죽도록 파고들어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 이른바 ‘오덕’들이 얼마든지 명함을 내걸 수 있고 오로지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만 부작용이라면, 반대로 깜냥이 되지 않는 자들이 우연찮게 얻게 된 ‘팔로워’에 의해 얼마든지 전문가 행세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랄까. 

 

문제가 된 스타일리스트 경우를 보면서 10여년 전 뉴욕의 그 스타일리스트가 떠올랐다. 자신이 맡은 런웨이를 가장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고용한 사람과 주먹 다툼 일보 직전까지도 불사하는 고집과 프로의식, 그리고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스타일리스트. 

 

시청자를 상대로 협찬 받은 가방 자랑이나 늘어놓으면서 거짓말이나 하는, 그리고 자신의 프로필 제일 상단에는 자신이 출연한 TV 프로그램 목록을 적어두고 본인 경력은 가장 아래로 깔아놓는 스타일리스트와 비교되기 충분했다. 

 

가짜가 판치는 지금 시대에,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들 각자의 몫이 돼버렸다. ​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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