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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빽바지 혹은 꽃무늬 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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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 (haklim.lee77@gmail.com) | 작성일 2020년 08월 10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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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이슈가 됐다.>

 

2003년 국회 본회의에서 흰색 면바지와 노타이 차림으로 의원선서를 하러 올라왔던 유시민 의원이 크게 이슈가 된 지 17년 만에, 이번에는 류호정 의원의 붉은 드레스 차림이 다시 이슈가 되었다. 

 

국회의원이 일만 잘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지지의견과 그래도 대학생들이나 입는 빨간 드레스에 운동화 차림은 국회의원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반대의견, 그리고 단순히 류의원을 비난하는 저급한 표현까지,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이기보다는, 서로가 가진 ‘국회’의 의미와 ‘품격’, 혹은 ‘에티켓’에 대한 가치에 따라 제 각각의 해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차치하고, 이슈가 된 김에 정치인들의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빽바지’ 사건

구로디지털단지역 주변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어르신들의 놀이터, ‘콜라텍’이 몇 군데 있다. 물론 최근 코로나 사태로 현재는 일시적으로 운영이 정지된 상태이긴 하지만, 노을이 불타는 저녁이 되면 한껏 멋을 부린 젊은 오빠, 언니들이 황혼을 불태우기 위해 그 자리에 나타난다. 

 

그리고 갑 오브 더 갑, 구로 패션의 정점은 언제나 ‘빽바지-빽구두’차림이다. 비록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배는 조금 동그랄지언정, 한때 구로동을 휘어잡던 그 형님누님들의 센스는 어디 가지 않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나 ‘보스’는 흰 양복차림이었고, 거기에 빽구두까지 더해지면 ‘마이클 꼬를레오네’가 따로 없을 만큼 ‘흰옷’은 일종의 ‘끝판왕’만이 착용할 수 있는 최강의 아이템이었다. 

 

물론 17년 전의 한 젊은 정치인이 입었던 ‘빽바지’는 보스 아이템이라기보다는 공부밖에 할 줄 모르고 취미도 없는 책벌레 복학생의 4계절 유니폼 같은 느낌이기는 했지만, 그 젊은 국회의원이 취임 선서를 위한 자리에 나서기 전, 옷장을 열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를 고민하던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꼬를레오네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대통령의 짝퉁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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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당시 후보였던 문대통령이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신고 있었던 양말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독수리 로고가 새겨진 양말을 신었다는 이유로 일부 누리꾼들은 양말은 명품을 신으면서 ‘서민 코스프레를 한다’는 식의 비난여론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이에 아내 김정숙 여사는 트위터를 통해 그 양말은 8켤레에 2만원을 주고 산 가짜였다고 밝히면서 모든 일이 웃픈 코미디로 일단락된 일이 있었다.  

 

빽바지에 갈색 구두, 헐렁한 티셔츠에 사이즈가 엉성한 감색 재킷을 입고 국회의원 선서를 하러 단상에 오른 젊은 정치인, ‘가짜’아르마니 양말을 신은 ‘검소한’ 대통령 후보, 그리고 깜찍한 디자인의 짧은 원피스 드레스에 검은 캔버스 운동화,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당을 대표하는 노란색 마스크까지 쓰고 나타난 젊은 여성 정치인을 두루 겪으면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Duke of Windsor’ 에드워드 8세

굳이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교복 때문에 넥타이를 매본 경험이 있는 남성들, 혹은 남편의 넥타이를 매준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가장 널리 알려진 넥타이 매는 방법인 ‘윈저 노트(Windsor Knot)’의 주인공, Duke of Windsor, 에드워드 8세(후에 회고록에서 본인은 이 방식을 볼품없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이 고안해낸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 잘생긴 얼굴로도 유명했지만, 그것보다도 한 시대를 풍미한 패션 아이콘이자 패셔니스타로 유명했던 인물이자, 사랑을 위해 왕권까지 포기한 로맨티스트.

 

글렌 체크나 널찍한 피크트 라펠(Pea ked Lapel)같이 윈저공을 상징하는 여러 스타일링 방식도 있지만,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노동자 계급에서만 입던 니트 스웨터를 셔츠 위에 입는 등 보수적인 영국 왕실 패션의 틀을 넘나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국 왕실’이 지구레벨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꼰대집단’이자, 권위와 보수로 똘똘 뭉친 특수한 환경이었음을 고려하면 노동자 계급이나 입는 옷을 왕실에서 입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난받을 수 있는 행위일지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저공의 독특한 센스는 비난은커녕, 아직까지도 클래식 룩의 아이콘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는 어떤 경우에도 ‘품격’을 망가뜨리는 식의 접근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았음에도, 넘지 말아야할 선은 결코 넘지 않았기 때문에 ‘패션 테러’가 아니라 ‘창의적인 패션’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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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 노트’의 주인공 에드워드 8세.>

 

파격과 파괴, 그 언저리 

우리가 남의 장례식에 갈 때 검은색 옷을 입는 이유는 고인에 대한 존중과 무거운 자리에 대한 감성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남의 결혼식에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 이유도, 그 날은 그 누구보다 신부를 돋보이게 해주기 위함이다. 

 

식사를 할 때 연장자가 수저를 들면 그제야 다 같이 식사를 시작하는 이유나 연장자나 선배에게 존대어를 사용하는 이유 역시 그들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행동 양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비합리적이고 효율적이지 못한 이런 행동양식이나 표현들은 오랜 시간 지켜지고 계승되면 ‘전통’이 된다. 스페이스X가 지구로 귀환까지 하는 이 시대에도 주말이면 목사님들은 거추장스러운 가운을 걸치고, 온갖 과학적인 조명이 존재함에도 여전히 구닥다리 촛불을 켜고 예배를 시작하듯이, ‘국회’라는 공간은 대단히 공적인 공간이기에 그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에는 공식적인 절차와 형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절차와 형식’에는 엄연히 의복양식에 대한 암묵적인 형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젊은 국회의원의 빽바지나 붉은 원피스는 파격적인 것이 아니라 파괴적인 것에 불과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신은 가짜 ‘조지오 아르마니’양말은 검소함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격을 상징한다.  

 

젊은 여성 국회의원의 옷차림을 보면서, 카페에서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차림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수다를 떨면서 신발 좀 신어달라는 옆 사람의 말에 “뭐가요? 제 발에서 냄새 안 나는데요?”라고 되레 따지는 학생들의 모습, 알록달록한 고가의 등산복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말 예배에 참석해서는 “하나님께 예쁘게 보이려고 예쁜 옷을 입었다”고 자랑스레 옷 자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쯤 우리도 파괴적인 패션이 아닌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이는, ‘날티’나는 것이 아니라 ‘근사한’ 정치인, 근사한 패셔니스타를 가져볼 수 있을까.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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