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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리고 말콤 맥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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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UX’ 디렉터 (haklim.lee77@gmail.com) | 작성일 2020년 09월 28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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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서 국적은 딱히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한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한 도시, 혹은 나라를 상징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뉴욕 패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캘빈 클라인과 랄프 로렌이 떠오르거나 ‘이탈리아 패션’을 떠올리면 돌체 앤 가바나, 혹은 프라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런던의 패션을 이야기할 때, 폴 스미스와 함께 거의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한 명 있으니,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디자이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주변 인물들부터 당시 영국의 상황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특별히 그녀의 커리어를 둘로 나누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펑크의 여왕 비비안 웨스트우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무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에 잉글랜드 맨체스터 부근의 시골에서 ‘비비안 이사벨 스와이어(Vivienne Isabel Swire)’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났다. 

 

1958년, 그녀의 가족은 런던 교외의 해로우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고, 그녀는 해로우 예술대학에서 은가공을 공부하지만 예술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다. 그 후 공장 등을 떠돌다가 교육 대학을 다닌 후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다. 1962년, 한 공장의 견습생이었던 데렉 웨스트우드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비비안 이사벨 스와이어’라는, 어딘가 다소 모자라 보이던 그녀의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을 완벽한 이름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로 완성된다.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

 

말콤 맥라렌은 194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말콤이 2살 때 이혼했으며, 그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났지만,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다. 이후 그는 16세가 되던 해부터 7년에 걸쳐 세인트 마틴과 해로우 예술대학, 골드스미스 등 여러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예술혼을 키우게 된다. 

 

그는 순수 미술 쪽으로 여러 코스를 거치면서 나름 진지하게 커리어를 만들었지만(주로 전위 예술을 가장한 사고를 치면서), 음악 쪽에도 관심이 많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펑크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매니저 역할을 하기도 했고, 자신의 앨범을 내기도 하는 등 의외로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뮤지션이기도 하다(위키피디아의 말콤 맥라렌 항목에는 그를 엄연히 ‘Musician’으로 분류하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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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Rock’에서 ‘World’s End’까지

말콤 맥라렌이 예술학교를 떠돌면서 수없이 창의적인 사고(?)를 치고 다니던 시절, 그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눈이 맞아 비비안은 남편과의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하고 말콤 맥라렌과 사귀게 된다(애까지 낳은 것은 안 비밀). 

 

이후 1971년, 말콤은 그의 예술대학 친구였던 패트릭 케이시와 함께 첼시의 430 King’s Road에 있던 Paradise Garage라는 작은 부티크 한켠에 가판대를 만들고 자신의 수집품과 중고 의류, 록 음반 등을 팔기 시작했다. 

 

사업 수단이 좋았는지, 같은 해 11월에 부티크의 주인인 트레버 마일스는 말콤에게 아예 이 가게를 전부 넘겼고, 말콤은 이 가게의 이름을 ‘Let it rock’으로 바꾸게 되는데, 이때부터 말콤은 당시 여자친구였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함께 직접 디자인 한 의류 제품들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고, 이 가게는 당시 바닥에 침 좀 뱉던 런던 양아치들의 아지트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이후 이 가게는 1972년에 지드래곤의 문신으로도 유명한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로, 다시 1974년에 ‘Sex’로, 다시 1977년에는 ‘Seditionaries’로 바뀐 후 1980년 ‘World’s End’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지금도 430 King’s Road에는 커다란 시계가 붙어있는 World’s End 숍이 있다. 이 숍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컬렉션과는 무관한, 펑크족들에게는 영원한 클래식인 그 당시 판매된 디자인들이 꾸준히 생산, 판매되고 있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1960년대가 이른바 비틀즈와 트위기로 상징되는 ‘모즈(Mods)’, 그리고 ‘루이스 레더(Lewis Leathers)’ 바이커 재킷과 ‘트라이엄프(Triumph)’ 모터사이클로 상징되는 ‘록커(Rocker)’, 두 젊은 층의 대결구도였다면, 영국의 경제가 파탄에 이른 1970년에 들어 런던의 뒷골목은 이른바 ‘펑크족’으로 가득 차게 된다. 

말콤과 비비안은 숍 이름을 바꿀 때마다 콘셉트도 바꿔가면서 운영했다.

 

‘Let it rock’ 시절에는 50년대의 테디 보이 스타일을,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때는 록커 스타일의 옷을 취급했다. 1974년 ‘Sex’로 다시 이름을 바꾼 이후로는 시기에 맞게 본디지 룩을 비롯해서 찢어지거나 비대칭 디자인 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펑크룩’을 선보였으며, 당시 런던 펑크족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숍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이른바 ‘죽돌이’들이 있었는데, 말콤 맥라렌은 숍의 이름인 ‘Sex’를 홍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그 죽돌이들 몇 명을 모아 밴드를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음악적 재능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던 런던 양아치 네 명을 모아서 대충 만든 밴드의 이름은 숍의 이름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인 만큼, ‘Sex’라는 단어를 포함하면서 최대한 난잡하고 지저분하게 만들어졌으니, 그건 바로 록음악의 역사에 당당히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저 유명한 ‘Sex Pistols’ 되시겠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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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이름이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대충 만든 엉터리 밴드인 Sex Pistols의 상업적인 대성공, 그리고 펑크 문화의 세계적인 붐과 연결된다. 

 

1970년대의 영국은 생산성은 낮고 임금 상승률은 높아지는 구조였으며, 연평균 성장률이 꼴찌였던 독일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일 정도로 낮았고,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영국은 1976년부터 1977년까지 12개월 간 IMF의 관리를 받기도 했다). 또한 미국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젊은 층으로부터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심이 극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즉, 당시 영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은 일종의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고, 반사회적이고 반항적인 펑크 문화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대단히 좋은 구실이었다.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무능한 영국 여왕을 조롱하거나 기존의 가치를 가차 없이 무너뜨리는 디자인들을 선보이면서 펑크족들의 지지를 얻었고, 이들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던 Sex Pistols의 대성공으로 말콤 맥라렌, 그리고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이름은 패션계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1년 이후로 둘은 Pirate 컬렉션을 시작으로, Savages Buffalo/Nostalgia Of Mud, Punkature, Witches, Hypnos를 거쳐 1985년의 Clint Eastwood 컬렉션까지 함께 디자인 작업을 하고, 말콤 맥라렌이 지나치게 상업적이기만 하다는 이유로 이 둘은 갈라서게 된다. 

 

실제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은 말콤과 함께 하던 시기, 그리고 독립한 후가 완전히 다른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펑크룩’, 즉 본디지나 징 달린 난잡한 그래픽 프린트나 너덜너덜하게 찢어 놓은 디테일 등은 대부분이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아니라 말콤 맥라렌의 아이디어였으니, 어떤 면에서 진정한 펑크의 제왕은 말콤 맥라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콤 맥라렌과 결별하고 독립한 이후의 비비안 웨스트우드 이야기는 다음 호에 이어서 정리 해보려고 한다.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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