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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펑크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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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 (haklim.lee77@gmail.com) | 작성일 2020년 10월 12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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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분명 짧고 굵었던 70년대 펑크시대(Punk-era)의 중심에 있었던 대표적인 펑크족이자,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펑크룩을 고안해낸 디자이너다. 그럼에도 그녀의 디자인 철학보다는 오히려 말콤 맥라렌, 섹스 피스톨스와 시드 비셔스, 낸시 스펑겐 등 흥미진진한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들이 더욱 회자되곤 한다. 그 바람에 의외로 그녀의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말콤 맥라렌

비비안과 말콤 맥라렌과의 관계가 정리된 것은 1984년의 일이지만, 그녀는 ‘World’s End’의 레이블로 1985년에 ‘Clint Eastwood’ 컬렉션을 한 번 더 발표한 이후부터 그녀의 이름을 내건 ‘Vivienne Westwood’ 레이블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말콤 맥라렌과 함께 하던 시기의 디자인들은 대단히 난잡하고 지저분한 ‘런던식 펑크룩’으로 가득했었다. 넝마에 가까운 찢어지고 더럽혀진 티셔츠와 반사회적인 그래픽 아트, 본디지 바지나 안전핀 장식 등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반복되고 있고 계승되고 있는 런던식 펑크룩의 거의 모든 아웃핏은 사실상 이 몇 년 사이에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에 의해 탄생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이름을 내건 이후의 그녀의 컬렉션과 디자인은, 굉장히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게 된다. 이는 말콤과의 결별 이유와도 연결된다. 말콤은 언젠가부터 돈만 밝히는 장사꾼이 되었으며, 비비안이 고급스러운 펑크룩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밝혔던 시점을 떠올려보자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변화였다고 볼 수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진정한 디자인 세계가 시작되는 일종의 분기점인 셈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을 몇 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만의 개성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건 ‘대조(Contrast)’가 아닐까.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패션에는 펑크, 해적, 문제의식과 같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무거운 주제의식들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로맨틱, 사랑과 같은 감성적인 요소들 역시 공존하고 있다. 이런 수많은 모티브들은 무질서하고 난잡할 수 있음에도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계산된 컬렉션 안에 녹아 있는 것이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결국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대중적인 지지를 얻게 되고 승승장구하게 된다. 

 

뒷골목 펑크족에서 대영제국의 문제아가 되다

말콤 맥라렌과의 결별 이후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활동 무대를 런던의 골목에서 영국 전체로 넓히게 되었다. 

그녀가 한창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쌓아 가던 1989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상류층의 잡지인 ‘Tatler’의 만우절 특별판에서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를 조롱하는 패러디로 표지를 장식하며 영국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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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마가렛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일부에게는 혁신적인 정치가로 인정받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독단적인 위선자로 평가하기도 하는 등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던 시절이었다. ‘이 여인은 한 때 펑크족이었다’라는 대처를 조롱하는 문구와 함께 공개된 이 표지는 이후에 가디언지가 뽑은 영국 잡지 최고의 커버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이 특별판이 발간된 며칠 후에 담당 에디터였던 엠마 솜즈는 해고되었다는 슬픈 뒷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유명한 일화 하나 ‘훌러덩’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훈장(OB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은 1992년, 그녀는 영국의 상징인 버킹엄 궁전에서 역사적인 사고(?)를 다시 한 번 친다. 훈장을 받는 그녀를 찍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진 기자들 앞에서 그녀는 멋지게 한 바퀴를 빙글 도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그녀는 그 날 ‘매우 의도적으로’속바지는 물론 속옷조차 입지 않은 상태였고, 이를 지켜본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행히도(?) 웃음을 터뜨리며 이 전위예술을 즐겼다고 한다. 

 

물론 이후에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진지하게 여성인권문제나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 같은 정치적인 이슈부터 비핵화, 테러 금지, 환경문제 등 세계적으로 관심이 필요한 수많은 공익적인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거나 행사를 주관하는 등 꾸준히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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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크론탈러(왼쪽)와 비비안(오른쪽>

 

안드레아스 크론탈러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예술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던 1988년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그녀의 학생이었던 안드레아스 크론탈러와 눈이 맞아 무려 25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1993년에 비밀리에 결혼하게 된다. 

 

안드레아스는 1992년부터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조력자로 그녀의 컬렉션에 참가하게 되고, 이후 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조용히 활동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최상위 레이블인 ‘Vivienne Westwood Gold Label’은 2016년을 기점으로 아예 ‘Andreas Kronthaler for Vivienne Westwood’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시점부터 사실상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브랜드의 전면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Vivienne Westwood’ 레이블은 전면적으로 안드레아스가 맡게 되었다. 

 

디자이너의 디자이너 

섹스 피스톨스의 리더였던 쟈니 로튼은 한 인터뷰에서 펑크 음악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섹스 피스톨스는 펑크 음악을 하던 밴드가 아니라 펑크 그 자체였다. 즉, 섹스 피스톨스의 해체와 함께 펑크 문화는 40년 전에 완벽하게 끝난 셈이다.” 

 

어쩌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펑크 디자이너일지도 모르겠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치 않는 자기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확고한 자기 영역을 유지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혹은 몇 시즌에 걸쳐 ‘핫한’ 디자이너는 늘 존재해왔으나, 한 순간 확 타올랐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곤 하는 것이 패션계의 흔한 모습이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하나는 패션디자이너, 나머지 하나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시작부터 펑크였고, ‘펑크 무브먼트’를 만들어낸 중심에 있었으며, 평생을 펑크족으로 살아오면서 결국 그 누구에게도 여왕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진정한 ‘펑크의 여왕’이자,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던져주고 있는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임에 틀림없다. 한 때 이 시대 최고의 패셔니스타였던 한 가수의 몸에 평생 새겨져 있을 그녀의 대표적인 문구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처럼.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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