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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누구를 위한 '블랙프라이데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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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 (haklim.lee77@gmail.com) | 작성일 2020년 11월 16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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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nbc>

  

올해 블랙 프라이데이는 11월 27일이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인 11월 네 번째 주 목요일 다음날부터 크리스마스와 새해까지 미국의 모든 유통업체들이 한 해 동안 팔고 남은 물건들 재고떨이 하는 날을 뜻한다. 

 

새벽부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앞에 진을 친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마치 스타 크래프트의 ‘무한 저글링 러쉬’를 방불케 하는 그 장면을 아마 다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90%라는 어마어마한 할인

필자의 유학시절, 어느 선생님은 블랙 프라이데이 전주 수업에서 매우 비장한 얼굴로 자신이 노리고 있는 브랜드의 가방을 꼭 사야 한다며 수업을 뒤로 미루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선생이 수업을 연기할 정도로 미국인들은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이 되면 한 달 전부터 백화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쇼핑 리스트를 정리하고 가능한 모든 것을 ‘득템’할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을 짜면서 D-DAY를 기다리곤 한다. 

 

또한, 블랙 프라이데이에 모든 상점들은 새벽 4시 정도부터 문을 열기 때문에, 목요일 밤부터 상점 근처에는 긴 행렬이 형성되곤 한다. 필자도 딱 한번 경험 삼아 학교 친구와 뉴욕의 고급 백화점 앞에서 밤새 줄을 서 있다가 달려 들어가서 1,200달러짜리 운동화를 정확히 320달러에 구매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물론 한국에서 세일은 그리 특별한 행사는 아닌 것 같다. 정확히 계산해본 적은 없지만 인상 비평으로는 거의 모든 백화점들이 사시사철 세일 중인 마냥 한국 백화점들도 물건을 싸게 파는 행사에 적극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세일을 제대로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블랙 프라이데이부터 시작되는 미국의 연말 세일은 최소한 40%부터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60%, 새해가 되면 80% 딱지가 붙기 시작하며 봄 제품이 들어오는 1월 말까지 팔리지 않은 ‘악성재고’는 90% 할인된 가격으로 비참하게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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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nbc>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90% 부터’

한국의 세일에선 이런 아름다운 장면을 경험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폭탄 세일! 90%’라는 무시무시한 문구를 자세히 보면 90% 옆에는 항상 폰트 사이즈 3정도로 예상되는 작은 글자로 ‘~부터’라고 적혀있다. 

 

그들이 말하는 90% 세일 제품이란 만들어진지 적어도 8년쯤 된 것 같고, 디자인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정신이 멀쩡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돈 주고는 살 것 같지 않은 거적때기 수준의 악성 재고들이다. 그나마도 ‘90%’라는 상징적인 단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막상 쓸 만한 것들은 생색이라도 내듯이 10% 정도 깎아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언젠가 부터는 기분만 더러워지는 이 엉터리 세일 행사에 가느니 배송비 내고 관세까지 물더라도 해외 쇼핑몰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게 느껴졌다. 

 

이유가 뭘까?

왜 미국에선 세일이 40%로 시작해서 90%로 끝나는데 한국에선 10%에서 시작해서 10%로 끝나는 것일까?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그들의 배포도 크기 때문에? 미국은 원래 물가가 싸기 때문에? 미국 유통업자들은 마음씨가 좋아서? 업자들이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손해보고 팔았던 블랙 프라이데이 적자 영수증을 산타 할아버지가 돈으로 바꿔주기라도 해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백화점에선 세일의 당사자가 백화점이고, 한국의 백화점에선 세일의 당사자가 생산자, 즉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화점과 유통업체들의 입장에서 시즌이 지난 제품들은 빨리 없애야 현금화도 되고 창고를 비워야 새 시즌 제품들을 채워 넣을 수가 있기 때문에 세일 기간이 되면 어떻게든 물건을 없애는 쪽으로 노력하고, 세일기간이 끝나갈수록 점점 가격을 떨어뜨려 재고처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세일로 유명한 샤넬이나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들도 세일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백화점에 있는 제품들은 백화점이 사다 놓은 것들이 아니라, 백화점의 공간을 빌린 것이다. 그래서 백화점들은 세일 기간에 재고를 떨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차피 팔리건 안 팔리건 백화점은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이고, 판매가 저조한 브랜드는 내 쫒아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미 말도 안 되게 높은 수수료를 내고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 입장에서는 세일이 전혀 달갑지 않다. 팔아봐야 수수료를 떼이고 나면 남는 것도 없는데 반 강제적으로 세일까지 하고 나면 오히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일이라고 해봐야 기껏 10~30% 수준에 불과할 수밖에 없고, 그 사이사이에는 도저히 팔리지 않았던 옛날 악성재고들을 슬쩍 묻어놓고 70%니 80%니 해가면서 생색이라도 낼 수밖에 없는 비참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는 당시 메르스 유행으로 인한 내수시장 침체를 만회하고자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를 만들었다. 거창하게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를 이름까지 그대로 따와서 야심차게(?) 정부 주도로 2주에 걸쳐 진행했지만 삼성전자, LG 등 대표 가전업체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인지도 있는 브랜드들은 참여조차 하지 않아 사실상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여준 빈껍데기 행사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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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straitstimes>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행사’

이후 이 행사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로 이름이 바뀌고 행사 기간도 10월에서 11월로 변경됐으며 정부 주도가 아닌 업계가 모든 것들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나름대로 모양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들어갔다. 올해 역시 11월 1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진행됐다. 

그럼에도 이 행사는 시작부터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엉터리 행사’이다. 

 

앞서 언급했듯, 연말 세일 행사의 의의는 유통업체들이 1년 동안 팔고 남은 재고를 처리하는 것에 있다. 그 과정에서 유통업체는 창고를 비울 수 있어야 하고, 새 제품을 창고에 넣기 위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소비자들은 갖고 싶었던 것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어-물론 그만큼의 물리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평소 비싸서 고민되던 것들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기쁘게 ‘득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는 파는 입장에선 안 그래도 수수료 문제 때문에 버거운데 거기서 더 깎아서 팔아야 하니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억지로 참가하게 된다. 소비자들 역시 고작 15~20% 세일로는 별로 싸게 산 것 같지도 않은데다 뭐 대단한 할인이라도 해줄 것 같던 문구와는 달리 별로 볼 것도 없는 행사에 속은 것 같이 기분만 나빠진다. 한 마디로 백화점만 이득을 보는 구조이다 보니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행사가 될 뿐이다. 

 

물론 ‘모든’ 업계 사람들은 문제가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나아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디에 손을 대야 하고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모두’ 알고 있다. 동시에 수 십 년 동안 아무 것도 바뀌지 않고 결국은 유통업자들만 돈을 버는 악순환만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아직도 블랙 프라이데이니 뭐니 해서 여러분의 지갑을 유혹하는 문구가 보인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마존부터 이베이, 야후제팬까지, Yoox부터 Farfetch나 Ssense까지, 굳이 귀찮게 백화점까지 갈 필요도 없이 여러분의 지갑과 감성 모두를 아름답게 만족시켜줄 수 있는 방법은 널리고 널렸다.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리는 행복한 블랙 프라이데이가 되시라.  ​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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