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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패션 실험실/김유겸

과잉의 시대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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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유겸 FITI시험연구원 본부장 (youkyum@hotmail.com) | 작성일 2021년 11월 15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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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이끄는 핵심은 욕구 아닌 필요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한동안 집안에 쌓아 둔 물건을 치워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다.

 

일상 속에 함께 해 온 물건들은 나름의 사연과 이야기를 갖고 쓰임을 기다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차지하다가 어느 순간 그냥 그 자리에 붙박이가 된 물건을 과감히 치우자 깔끔해진 공간을 마주하며 놀라는 모습은 마치 내 집의 묵은 짐들을 치워 준 것처럼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출연자들은 집 주인에게 그 물건이 필요한 것인지를 묻는다. ‘필요한 것’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 생활하는데 소용되는 기능이 있는 것을 말할 것이다. 

 

단지 ‘갖고 싶은 것’이어서 집안에 쌓아두고 언젠가는 쓸데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망설이다 그냥 자리를 차지한 물건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들은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원한다’는 개념과 ‘필요하다’는 개념을 혼동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인류는 생명 유지에 부족한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애쓰면서 ‘필요’ 이상의 것을 필요하다고 느끼는 ‘욕구’가 나타났다. 필요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이 당연시되며, 욕구의 시대는 정당화되었다.

 

패션은 욕구의 대상이다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음식에 대한 욕망은 위장이 작아서 제한적이지만, 주거지와 가구, 옷, 장식품, 탈것 등 편리함에 대한 욕망은 경계가 없는 듯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790년 세상을 떠난 아담 스미스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간 것처럼 ‘욕구’에 기반하는 현재의 시장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의식주 중 ‘의(衣)’와 ‘주(住)’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 줄 대상이기 때문에, 부의 축적 수단으로서 오늘날에도 그 지위를 확고히 유지하는 모양이다. 

 

‘수요와 공급’은 시장을 움직이는데 가장 핵심적인 메커니즘으로 인정받고 패스트 패션의 가장 중요한 작동 원리로 작동했다. 필요 이상의 무제한의 욕구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똑같은 스타일이지만 다양한 컬러로 매장을 채워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생존을 위한 필요가 아니라 심리적 만족을 위한 욕구가 기업들의 부와 성장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수반된 ‘대량 생산’은 실제로 진행되었으나 ‘대량 소비’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불필요한 구매’만 있었을 뿐이다. 몇 년 전 인터넷 기사에서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의류의 1/3만 제 값에 판매되고, 1/3은 아웃렛 등 할인 매장에서 팔리며, 그 나머지 1/3은 팔리지 않아 소각된다고 한다.

 

(20년 2월 프랑스는 판매되지 않는 재고 의류를 폐기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판매된 옷들의 수명이 매우 짧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이다. 이로 인하여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이제 익숙하다. 

 

대량 생산은 대량 소비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생각되었지만, 대량 생산은 과잉 생산으로 나타났다. 과잉 생산된 서로 비슷한 상품들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소비자가 자신들의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해야 할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자신들의 상품을 돋보이게 하고, 선택해야 할 이유를 전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아마 그 상품이 욕구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의 지적처럼 패션은 ‘지위상징(status symbol)’과 ‘과시적 소비(conspicious consumption)’라는 욕망을 해소시켜 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앞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소비자들은 단지 생존을 위한 필요에 따라 패션 제품을 구매하기보다는 욕구를 채워 줄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제 그 기준이 바뀌고 있다.

 

경제적 판단이 최선인가?

비교우위론(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이라는 경제적 가치 판단 기준에 따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글로벌 공급망 체계는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디젤 자동차에 쓰이는 요소수 사태를 보며 대량 생산, 공급 체계에 최적화된 방식은 항상 작동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있다. 

 

경제적 판단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고, 그 경제적 판단의 이론은 불변의 원리로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가 원리(principle)에 따라 작동한다면 디젤 자동차의 요소수는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비교우위론은 이론(theory)이다. 상황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늘 그렇게 작동한다는 것이 아니다. 엔지니어의 주제넘은 짧은 식견이지만,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이론들은 자연과학에서 찾아낸 원리(principle)가 아니기 때문에 상황과 환경이 바뀌면 달라 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요소수가 모자랄 수도 있다는 것이 설명 가능해진다. 이것은 한편으로 앞으로 마주할 세상에 대한 경제적 판단 기준이 확연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GDP로 표현되는 경제적 성장은 과잉 생산을 통해 진행됐다. 부의 축적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고, 이를 통해 과잉의 부를 얻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이 진행됐다. 

 

단지 GDP의 성장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키는 행위조차 유익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경제 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환경에 대한 부담 최소화,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온실가스의 배출 억제와 같은 노력이 사회적 비용으로 고스란히 반영되어야 한다.

 

과잉의 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시절은 끝났다. 동시에 과잉의 소비의 시대도 함께 막을 내리고 있다. 과잉의 이산화탄소가 문제이고, 과잉의 폐기물이 문제다. 

 

‘욕구’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야 한다

이 글을 정리하는 동안 영국에서 진행 중인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미국과 중국이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합의한다고 발표했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도전으로 미래세대 행복과 관련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에 앞서 11월 8일 패션산업 기후 행동 헌장(Fashion Industry Charter for Climate Action)은 패션산업의 2050년 Net Zero 실현을 위해 2030년까지 이전 계획보다 강화된 50% 절감 목표를 제시하였다. 

 

동시에 구체적인 회원 기업들의 이행 프로그램들도 제시하였다. 글로벌 패션산업계는 더욱 전향적으로 다음 세대의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화 프로그램과 노력은 결국 지속가능한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현 세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는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절대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다.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욕구라는 기준에 따른 경제적 가치와 결과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경제 활동에 대한 가치 판단 기준이 바뀌게 된다. 그래서 ESG 경영이 등장했고, 그러면서 세상의 기준과 세상이 바뀔 것이다.

 

패션과 섬유산업이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욕구에 기반한 비즈니스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소비자들의 욕구는 존재할 수 있으나, 그에 따른 지불 비용은 매우 부담이 클 것이며, 동시에 그런 소비자 욕구에 기반하는 패션 기업 또한 지불해야 할 부담과 제약이 상당할 것이므로 일반화된 형태로 시장을 확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매우 작은 소규모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있을 것이다. 동시에 럭셔리 브랜드처럼 ‘갖고 싶은데 필요한 거야’ 라면서 욕구와 필요를 일치화 시키는 시도도 꾸준히 진행될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예측 가능한 사실은 기후위기 해소라는 절대적인 필요에 따라 향후 산업과 사회 전반이 요동칠 것이라는 점이다. 그 변화를 이끄는 핵심은 욕구가 아닌 필요이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 봐야 한다.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혹시 ‘욕구’를 위한 것은 아닌지?​ 

경력사항

  • (재) FITI시험연구원 Quality & Audit
  • ISO/TC 38 Textiles, convenor – WG27, WG31 SC24/WG5
  • ISO/PC 308 Chain of Custody, ISO/TC 323 Circular Economy delegate
  • 한중일 섬유산업연합회 협력회의 지속가능성분과 한국간사
  • 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 Fashion Charter Working Group member
  • 경희대학원 섬유공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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