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어오는 와인의 바람 > 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다시 불어오는 와인의 바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 작성일 2021년 06월 28일 URL 복사
카카오톡 URL 복사

본문

1128e02e55c1d4aa76446ecb1941a6eb_1624773495_0638.jpg

<보졸레누보 와인은 보졸레누보 파티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마케팅에 성공했다.>


최근에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 소주 일색이었던 사람들의 술 취향이 급작스럽게 와인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피드와 스토리를 봐도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었다. 관련 통계와 뉴스를 찾아보니 수입량도 소비량도 늘어난 것이 맞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나 스스로 납득이 갈만한 인과관계는 찾지 못했다. 다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코로나 시국 때문에 다들 집에서 요리를 하고 술을 마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와인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 그럴싸한 이유이긴 하다. 그런데 여전히 궁금한 것은 왜 하필 와인인가 하는 것이다.

 

집에서 요리를 하고 술을 마시면 늘상 마시던 소주를 더 마시던가, 맥주를 마시던가, 소맥을 더 크리에이티브한 방법으로 말아서 마실 수도 있을 터인데, 왜 갑자기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것일까. 왠지 코로나 말고 무언가 저변에 깔린 더 깊은 이유가 있을 듯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확실한 단서는 내 능력으로는 알아내기 힘드니 인과관계야 어찌되었든 일단 이 유행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먼저 와인을 먹자고 선동(?)하지 못해서 무리의 분위기에 따라 소주를 마시느라 좀 아쉬웠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먼저 와인을 마시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요즘의 이 변화가 참 반갑다. 

 

1128e02e55c1d4aa76446ecb1941a6eb_1624773505_3528.jpg

<보졸레누보 파티>

 

 

보졸레누보

지금 와인 업계는 초호황이다. 2020년 우리나라의 와인수입액은 2,6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와인을 판매하는 소매점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마트와 편의점에서 취급하는 와인의 종류도 상당히 늘어났다. 

 

사실 우리나라 와인 역사는 상당히 짧은 편이다. 짧은 역사에 비해 시장이 눈부시게 성장한 것도 맞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우리나라 와인 시장은 젊은 청년과도 같다고 말한다. 

 

어쩌면 코로나는 그저 도왔을 뿐, 소득수준에 따라 소비문화가 성숙해 가는 수순을 보면 현재의 대중이 와인을 받아들이는 적절한 시점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와인이 공식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이지만, 사실 와인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보졸레누보 파티가 와인을 대중적으로 퍼뜨린 마케팅 중 가장 성공한 예가 아닐까 싶다. 

 

이 유행은 당시에도 몇 년 가지는 못했고 지금은 보졸레누보를 찾아 마시는 사람도 거의 없겠지만, 제 1차 와인 붐의 서막을 열어 주었던 것 같다.

 

2004년에는 칠레와의 FTA 협정이 체결되면서 중산층들이 와인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가격 대비 맛과 품질이 뛰어나다는 인식과 함께 ‘몬테스알파’ ‘카르멘’ 같은 칠레 와인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국민 와인이 되다시피 했다.  

 

신의 물방울

2005년에 나온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는 막 시작된 와인 붐에 기름을 붓는 기폭제가 됐다. 와인을 중심으로 한 주인공들의 대결구도와, 작중에서 ‘12사도’로 명명된 와인을 찾아 나서는 스토리의 극적인 재미도 충분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방식이 허무맹랑한 무협지 같아서 더 인기를 끈 것 같기도 하다. 와인을 마시면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들리고, 퀸의 노래를 떠올리고, 천국과 같은 꽃밭이 펼쳐지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이 만화를 통해 와인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 어렵고 두꺼운 와인 이론서보다 훨씬 머릿속에 잘 들어온다. 이 만화 덕분에 사람들은 프랑스 보르도의 5대 샤토를 배우고, 브루고뉴의 샹볼뮈지니 같은 황홀한 와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만화에 등장하는 끝판왕급의 ‘12사도’ 와인들은 당시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엄청난 가격에 구하기도 힘든 와인들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불과하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적절한 가격의 와인들 중에는 실제로 판매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마시면 퀸의 노래가 들린다고 표현한 ‘샤토 몽페라’는 당시에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 와인을 마시고 아무도 퀸의 노래를 듣지는 못했겠지만.

 

1128e02e55c1d4aa76446ecb1941a6eb_1624773792_2795.jpg 

 

와인양갱 & 와인킹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와인의 붐이 일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와인 붐을 1차라고 한다면, 최근의 와인 붐을 2차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1차 와인붐을 ‘신의 물방울’이 이끌었다면, 2차 와인붐은 와인을 다루는 유튜버들이 이끌고 있다. 그 중 ‘와인양갱’과 ‘와인킹’이라는 두 유튜브 채널을 주목할 만하다.

 

‘와인양갱’은 각종 대형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와인들 중 추천하는 와인들을 족집게처럼 집어주는 콘텐츠로 많은 ‘와알못’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다. 

 

와인을 어렵게 가르치는 느낌이 아니라 와인 경험이 많은 선배가 옆에서 ‘이거 맛있으니까 마셔봐’라는 느낌으로 알려주는 친근함이 좋다. 

 

‘와인킹’은 현재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와인 관련 유튜버 중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채널이기도 한데, 와인킹 본인도 와인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지만 와인에 관한한 전 세계 최고 권위로 일컬어지는 ‘마스터 오브 와인’이 두 명이나 출연한다. 

 

와인킹과 함께 마스터 오브 와인 선생님들이 온갖 싸구려 와인부터 초특급 그랑크뤼까지 블라인드로 맛보며 “이 와인은 좋고 저 와인은 쓰레기 같다”라며 신랄한 평가를 내려준다. 

 

와인 초보자뿐만 아니라 어지간히 와인을 많이 마셔본 고급 소비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이다.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마스터 오브 와인들의 생생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보는 일이 가능하기나 했겠는가! 

 

구경만 해도 좋은

와인 수입 사정도 20년 전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아졌다. 수입사도 늘어났고 수입되는 와인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가격도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수입 주류에 혹독한 세금을 매기는 우리나라이지만, 수입사들의 노력으로 현지가보다 싸게 살 수 있는 와인도 등장했다. 

 

와인 전문 리테일숍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교외에만 있던 아울렛 형태의 대형 와인 매장이 도심 한복판에 들어섰다. 논현동의 ‘포도상회’와 성수동의 ‘와인픽스’는 넓은 매장에 저렴한 데일리 와인부터 천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와인까지 폭넓은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서 구경만 해도 재미가 있다. 

 

대기업 중 신세계가 전개하는 주류숍인 ‘와인앤모어’와 편의점 ‘이마트24’는 술을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한 정용진 부회장의 영향 때문인지 갖추어 놓은 와인리스트가 아주 충실하다. 

 

또 최근에는 전통 시장 한복판에 있는 농수산물 마트가 웬만한 주류숍이나 대형마트보다 훨씬 좋은 와인리스트를 구비하고 있는 곳도 등장했다. 자양동의 ‘새마을구판장’과 건대역의 ‘조양마트’는 이미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처음에는 각종 와인 커뮤니티에서 이 두 마트의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시장에 있는 마트에 와인을 사러 가는지 의문을 품었는데 막상 가보니 라인업이 상당한 수준이다.

 

마트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의 와인에 대한 조예와 사랑이 깊은 덕에 탄생한 신기한 조합이다. 온누리 상품권으로 추가 할인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 입소문을 타고 와인을 사러 온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최근에 이런 와인숍들을 가보면 와인을 사러 온 사람들의 숫자도 늘었을 뿐 아니라 고객의 연령층도 매우 다양해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1128e02e55c1d4aa76446ecb1941a6eb_1624773846_1118.jpg 

 

온라인 천국이지만 여전히 발품을 팔아야 

그런데 이렇게 와인의 저변이 확대되는 현상은 참 즐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후진적인 우리나라의 주류 유통 규제는 불만이다. 온라인 쇼핑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전통주를 제외한 모든 주류는 인터넷으로 구매를 할 수가 없다. 법으로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와인 가격에 대한 정보는 꽤 불투명하다. 판매하는 곳마다 가격 차이가 난다. 가격 비교를 하려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엄청나게 발품을 팔거나, 온라인 와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찾아 헤매야만 한다. 그나마 최근에는 새로 생겨나는 와인숍들 덕분에 전반적으로 와인의 가격이 많이 하향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사고 싶은 와인을 찾기가 또 꽤나 어렵다. 수입사를 찾아서 전화로 오프라인 판매점포를 묻기도 하는 진짜 ‘쌍팔년도’ 방식을 동원해야 할 때도 있다. 

 

온라인으로 와인을 살 수 있다면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인터넷과 SNS 계정들을 뒤지며 손품을 팔지 않더라도 간단하게 사고 싶은 와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가격은 자연스럽게 판매자의 마진과 소비자의 이익 사이에서 적정한 선을 찾아 정착하게 될 터인데. 전날 밤에 주문한 신선식품이 다음날 새벽에 문 앞에 도착하는 온라인 쇼핑 서비스가 있는 나라치고는 너무나 후진적이다. 

 

아무리 큰 와인숍을 가도 내가 원하는 와인을 한 곳에서 다 살 수가 없다. 여기서 이 와인, 저기서 저 와인을 사러 돌아다녀야만 한다. 정부가 언제 주류의 온라인 판매를 다 허가해 줄지는 모르지만,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으니 언젠가는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보다 한층 더 와인의 붐이 크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즐거운 와인 생활

와인은 무언가 고급스러운 술, 특별한 날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남자들끼리 모여서 와인을 마시면 특이한 사람들 취급을 받고는 했었다. 지금은 그보다는 훨씬 일상적인 술이 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역사, 품종, 빈티지, 국가, 양조 방법 등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마시게 되는 술이다 보니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의 저변이 넓어짐과 동시에 교양과 문화에 대한 관심들도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와알못과 와린이가 줄고 전국민의 와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어 간다. 술을 “맛으로 먹나, 취하려고 먹지”라고 하던 선배님들의 시대는 이제 많이 자취를 감춘 듯해서 반갑다. 술은 맛으로 먹고 음식과의 궁합으로 즐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취하기도 더 즐겁게 취할 수 있지 않겠나. 

 

정말 코로나 때문에 와인의 붐에 불이 붙었다면 역경 속에서도 무언가 긍정적인 일은 일어나기 마련인가 보다. 

 

팬데믹이 슬슬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희망과 함께 새로 불어오는 와인의 바람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경력사항

  • 現 (주)코넥스솔루션 대표이사
  • 現 (주)유니페어 이사
  • 現 (주)링크인터내셔널 이사
  • youtube=풋티지브라더스(Footage Brothers)

FSP 연재

POST
STAND
(주)다음앤큐큐

인터뷰

패션포스트 매거진

64호 64호 구독신청 목차 지난호보기

접속자집계

오늘
1,584
어제
5,391
최대
14,381
전체
1,997,188

㈜패션포스트 서울시 강서구 마곡중앙로 59-11 엠비즈타워 713호
TEL 02-2135-1881    FAX 02-855-5511    대표 이채연    사업자등록번호 866-87-01036    등록번호 서울 다50547
COPYRIGHT © 2019 FASHION POS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