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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사도 사도 끝이 없는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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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fpost@fpost.co.kr) | 작성일 2020년 06월 22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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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티셔츠를 좋아한다. 혹시 “티셔츠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티셔츠를 좋아하지만, 나의 경우 ‘좋아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정상적이지 않은 정도를 말한다. 

 

패션 업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나 티셔츠를 생산하는 분들의 기준으로 봐도 아마 보통은 아닐 듯하다. 물욕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나, 사용하고 소모하는 개념이 더 큰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피곤한 성격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양적인 소비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반드시 양이 동반돼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이미 드레스룸과 옷장의 서랍이 모자라서 박스며 바구니에 넣은 티셔츠가 다른 방의 공간을 침범한지 오래다. 아마 더 이상 티셔츠를 사지 않아도 한 십 년은 거뜬히 지낼 수 있을 듯하다. 그래도 매년 산다. 이것은 이래서 사고 저것은 저래서 산다. 원단이 좋아서 사고, 봉재가 좋아서 사고, 컬러를 잘 뽑아서 사고, 핏이 좋아서 사고, 프린트가 맘에 들어서 사고, 디자이너의 의도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고, 집에 있는 것이 헐어서 같은 것을 또 산다. 

 

사고 한 번도 입지 않은 것도 있고, 일 년에 한두 번 입을까 말까 한 것도 있고, 단종될 것이 두려워서 사재기해 놓은 것도 있고, 빨고 마르면 바로 입을 정도로 자주 입는 것도 있다. 

 

나의 사랑, 티셔츠

다른 물건도 비슷한 방식으로 좋아한다. 애정하는 품목은 소비도 많다. 기호품은 제외하고 생필품의 범주에서는 셔츠도 그렇고 양말도 그렇다. 아주 좋아하고, 아주 많이 사고,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셔츠는 행거로 두 행거에 가득 걸려 있고, 양말도 서랍으로 치면 다섯 서랍쯤 가지고 있다. 그런데 티셔츠에 비하면 아무래도 좀 덜하다. 왜일까. 티셔츠는 셔츠보다는 충동적으로 사기 쉽다. 셔츠는 아무래도 조금 더 계획적으로 구매하게 된다. 사기 전에 고민도 좀 한다. 

 

티셔츠는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결제를 했다. 양말은 좀 더 생필품에 가까워서 필요할 때마다 사지만(응?) 티셔츠는 필요가 없어도 마음에 들면 산다. 아니 마음에 들면 꼭 사야만 한다. 몇몇 브랜드에서 상시 만드는 기본형 티셔츠 이외에 대부분의 티셔츠는 여름 한 철 판매하니까 지금이 아니면 못 사니까 꼭 사둔다. 사서 입어보고 마음에 들면 똑같은 것을 또 사기도 한다. 같은 것을 돌려 입기도 하고 한 녀석이 헤지면 버리고 또 꺼내어 입을 심산으로 고이 보관해 두기도 한다. 

 

분명 사더라도 딱히 입지 않거나 일 년에 한두 번 입을까 말까 할 것임을 알면서도 만듦새나 프린트가 마음에 들면 일단 사는 경우도 있다. 특히 프린트 티셔츠는 바디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프린트가 마음에 들면 산다. 나름 집에 쌓여가는 티셔츠 더미를 보면서 이제 그만 사도 되지 않을까 마음을 다잡아 볼 때도 가끔 있지만, 마음에 드는 티셔츠를 만나면 금세 그 다짐 따위는 여지없지 무너지고 만다. 

 

거친 원단이 좋아

티셔츠를 살 때는 주로 20수 이하의 굵은 원사로 된 두께가 좀 있는 원단을 선호한다. 코마사(combed yarn)의 맨들맨들한 촉감보다는 카드사(carded yarn)의 거친 느낌을 더 좋아한다. 30수 이상의 티셔츠는 오로지 속옷으로 입는 용도로는 구매하지만 겉에 입는 용도로는 사지 않는다. 한철 입고 버리기 보다는 꽤 여러 시즌 동안 입기 때문에 잦은 세탁에도 어느 정도 견디면서 점차 부드러워지는 원단이 좋다. 

 

또 몸통이 튜브같은 원통형으로 되어 옆구리에 봉제선(side seam)이 없는 것을 특별히 좋아한다. 사실 봉제선이 있거나 없거나 몸이 느끼는 차이는 거의 없다. 봉제선이 있다고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고, 없다고 훨씬 더 편하지 않다. 그러나 봉제선이 있고 없고는 2D냐 3D냐의 차이만큼이나 커서, 입었을 때 몸과 더 잘 반응한다고 느낀다. 

 

몸을 따라 흐르는 피팅감이 더 좋고 보기에도 더 유려하다. 아무래도 티셔츠는 니트(knit)이기 때문에, 튜브 형태가 니트로써의 특성을 더 잘 반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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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리아미키(吊り網機)라고 부르는 구식 니팅 머신.>

 

이왕이면 원통형으로

원형 몸통의 티셔츠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아마도 초기의 모든 티셔츠는 다 이렇게 환편기로 짠 튜브형의 몸통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영어로는 루프휠 머신(loopwheel machine), 일본어로는 츠리아미키(吊り網機)라고 부르는 구식 니팅 머신이었을 것이다. 

 

셀비지 데님을 짜는 구식 편직기들이 이제는 모두 일본의 오카야마 지역의 데님 공장에 남아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듯이, 티셔츠용 면 원단을 짜는 구식 환편기의 대부분도 일본의 와카야마에 있는 단 3군데의 공장에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길단이나 헤인즈, 챔피언 등의 미국 티셔츠 전문 브랜드들도 여전히 튜브형 몸통의 티셔츠를 생산하고 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신형 환편기와 구식 환편기는 완전히 다른 촉감을 가진 원단을 만들어 낸다. 

 

츠리아미키라고 불리는 구식 환편기는 실을 잡아당기지 않고 원단이 매달려 떨어지는 힘으로만 니팅을 한다. 속도도 엄청나게 느려서 고작 1시간에 1미터 밖에 짤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공기 반 실 반’이라고 할 정도로 적당한 장력을 가진, 마치 손으로 짠 니트와도 같은 촉감을 선사해 주는 원단을 만들어 낸다. 

 

츠리아미로 짠 튜브형 티셔츠는 촉감과 피팅이 다른 티셔츠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마치 폭신폭신한 가제 수건이 몸을 감싸주는 느낌과 비슷하다. 일본 현지에서 사도 싼 것이 한 장에 6천엔 정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애지중지 아껴가며 입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어느 때 입는 것이 제일 좋으냐 하면, 잘 때 입고 자는 것이 최고로 좋다. 실크나 캐시미어 잠옷을 입고 자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나름 사치스러운 행위다.  

   

프린트도 중요해

티셔츠를 고르는 기준 중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프린트 이야기를 해볼까. 티셔츠만큼 자기  표현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옷도 없기 때문에 프린트를 고를 때에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게 된다. 

 

브랜드명, 실존하는 학교의 로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록밴드, 내가 듣지도 않는 힙합 가수, 디즈니 캐릭터, 마블 캐릭터, 지나친 자기표현 스테이트먼트, 정치적 스테이트먼트, 실존하는 스포츠팀, 내가 실제로 즐기지 않는 스포츠 테마 등은 이제 사지 않는다. 특히 브랜드명이 새겨진 티셔츠는 입기가 좀 그렇다. 브랜드가 떡하니 새겨진 티셔츠 중 부끄럽지 않게 입을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가슴에 브랜드를 새기고 다닌다는 것은 내 취향과 그 브랜드의 페르소나를 일치시키는 행위이니 아무 브랜드나 입을 수는 없다. 

 

만화 캐릭터 중 사십대 이상이 입어도 좀 덜 우스꽝스러운 것은 내 기준에는 피너츠(PEANUTS) 정도라고 생각한다. 왠지 철학적이니까. 클래식 중 클래식인 디즈니 캐릭터들은 아슬아슬하게 괜찮은 기준에 들어오지만, 약간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티셔츠에 들어가는 프린트의 내용은 아주 약간의 위트면 족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개인의 취향이나 개인의 생각을 아주 간접적으로 슬쩍 드러내는 것을 입는 것이 쿨해 보인다.

 

약간의 시니컬함과 유머가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나도 실은 위의 모든 종류의 프린트 티셔츠들을 닥치는 대로 샀었기 때문에, 모두 가지고는 있지만 이제는 그냥 집에서 편하게 걸치는 용도로만 입게 된다. 티셔츠가 다른 아이템과 확연히 다른 이유는 입은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문화적 배경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티셔츠가 이런 문화적 아이콘이 되기 전에는 그냥 속옷이었다. 대부분의 옷이 그렇듯 티셔츠 역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미국 군인들에게 지급되었던 속옷이 그 기원이다. 

 

티셔츠가 겉옷으로서의 시민권을 획득한 것은 역시 복식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미국의 50년대와 60년대부터이다.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이 영화에서 흰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티셔츠가 청바지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이 두 영화배우의 공이 크지 않을까. 

 

티셔츠의 앞면에 프린팅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그리고 티셔츠에 프린팅을 하는 것이 커다란 비즈니스로 연결되고 사회적 메시지를 표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걸쳐서이다. 

 

히피 문화, 베트남 전쟁, 록뮤직과 펑크 문화의 속에서 티셔츠는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도구가 되었다. 그 뒤를 이어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힙합이 태동하면서, 티셔츠는 입은 사람의 메시지를 표출하는 강력한 무언의 도구로써 발전해 왔다. 그래서 티셔츠의 프린트는 고르는 재미가 있고, 그만 사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내용의 프린트가 찍힌 티셔츠는 사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것 아닐까 하고 소비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한다. 

 

소소한 즐거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티셔츠는 그저 속옷이거나, 여름에 입는 옷의 일종일 것이다. 매년 유행하는 핏과 컬러와 브랜드의 티셔츠를 사서 입고 또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일반적으로 티셔츠를 소비하는 행태일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사람인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딱히 수집을 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는 다 입는 것을 전제로 구입하는 것이지만, 그러기에는 약간 과하게 사들이는 것이 확실히 병적이기는 하다. 입지 않는다고 잘 버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른 옷들과 마찬가지로, 또는 다른 어떠한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골라서 입고 쓰면 삶의 스펙트럼이 확연히 넓어진다. 

 

백종원 씨가 말했듯,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티셔츠도 알고 입으면 더 멋있어 질 수 있고 더 재미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자기합리화를 한다.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티셔츠를 어딘가에서 발견하면, 그저 혼자 ‘후훗’하고 만족하며 구매한다. 이게 참 소소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티셔츠는 사도사도 끝이 없는 개미지옥이 아닐까.  ​ 

경력사항

  • 現 (주)코넥스솔루션 대표이사
  • 現 (주)유니페어 이사
  • 現 (주)링크인터내셔널 이사
  • youtube=풋티지브라더스(Footage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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