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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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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macrostars@gmail.com) | 작성일 2020년 10월 12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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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칼 라거펠트와 H&M은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발표했다. 물론 이전에도 브랜드 간의 협업이 있었겠지만 2004년 이후 협업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틈새의 통로, 이미지 변화의 방식, 새로운 마케팅의 방법이 되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협업 컬렉션

지금 2020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협업 컬렉션이 등장했다. 그 중에는 H&M과 지암바티스타 발리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오트쿠튀르의 협업도 있었고, 슈프림과 루이비통처럼 스트리트 패션과 럭셔리 브랜드 양쪽의 거물급 브랜드의 만남도 있었고, 발렌티노와 언더커버 혹은 몽클레르 지니어스 컬렉션처럼 한창 활동 중인 고급 브랜드 디자이너 간의 만남도 있었다. 

 

이외에도 의류 브랜드를 뛰어넘어 장난감, 아이스크림, 과자 브랜드에 택배 물류 회사까지 수도 없이 많은 브랜드들이 협업을 통한 의류 컬렉션을 내놓고 있다. 이런 것들은 밈(meme)을 만들고, SNS에서 공유를 타거나 아니면 그냥 한 번 정도 웃어넘길 거리를 주기도 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괜찮은 게 나오기도 하고,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너무 시시한 게 나오기도 한다. 협업이 워낙 많아지니 추구하는 목표와 결과도 그만큼 다양하다.

 

협업, 왜 하고 무엇을 보여 주는가

사실 협업 초창기에는 무슨 브랜드와 무슨 브랜드가 만나서 뭘 같이 했다는 것만 가지고도 화제가 되긴 했었다. 하지만 협업의 고리는 너무나 넓게 사방팔방 퍼져 있어서 무슨 만남 정도로는 더 이상 놀랄까 싶다. 즉 ‘의외’라는 장점은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너무나 흔해졌지만 그럼에도 많은 브랜드들이 여전히 협업 컬렉션을 내놓고 있다. 여전히 뉴스가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패션 정보 사이트에 기사 하나라도 더 올라가는 건 분명하고, 이미지를 바꾸고 새로 정립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과거 자기 브랜드의 컬렉션만을 주로 다루던 시절에도 컬렉션을 한다는 사실보다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훨씬 더 중요했다. 협업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아무도 어떤 브랜드가 협업을 하는가 안 하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협업을 한다는 사실보다 왜 하고, 무엇을 보여주는가에 더 집중한다. 

 

지금 우리는 패스트 패션, 스트리트 패션, 디자이너 하우스 패션을 마구 섞어서 입고, 예술과 인테리어, 생활 소품과 가구, 심지어 듣는 노래와 음식, 방송까지 생활의 저변 전반에 걸쳐 개인의 취향을 차곡차곡 구축하는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특별히 고립을 메인 이미지로 삼는 게 아니라면 다양한 취향의 전선을 가로지르는 방법으로 협업이 가장 우선 고려된다.

 

영향력 있는 협업이 가능하려면 자기 브랜드만의 독자적이고 확고한 영역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 브랜드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명확할수록 의외의 브랜드와의 협업이 더욱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애매한 포지셔닝의 브랜드끼리 협업을 해봤자 역시 애매하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최근 흥미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인 노스페이스의 모습은 꽤 재미있다. 

 

현재 노스페이스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를 담당하는 디자이너 팀 해밀턴은 미니멀리즘과 스포츠웨어를 기반으로 본인 이름의 브랜드를 론칭해, 2009년에는 미국 패션협회 CFDA의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 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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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와 팀 해밀턴의 조합

이후 그는 노스페이스와 사카이의 협업 컬렉션이 나올 때쯤인 2017년 가을에 노스페이스에 합류했다. 당시 노스페이스는 팀 해밀턴에 대해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영감을 가져와 변혁을 시도하는 디자이너라고 평가했고, 지금까지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후에도 노스페이스는 사카이를 비롯해 슈프림, 준야 와타나베 같은 디자이너와의 협업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또한 Z세대와 밀레니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노스페이스 퍼플 라벨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MM6와 협업을 통해 파리 컬렉션에도 진출하고, LA 기반의 스트리트, 스케이트 보드 패션 브랜드 브레인데드와의 협업 컬렉션을 내놓았으며, 최근에는 구찌와 풀 레인지 컬렉션을 발표했다. 그러는 사이에 블랙 시리즈 같은 쿠튀르와 테크니컬 스포츠웨어의 조합을 표방한 패션 컬렉션도 선보였다. 여기에 퓨처 라이트 같은 신소재를 이용한 제품군을 내놓기도 했다.

 

테크니컬 아웃도어 웨어를 손에 들고 고급 브랜드부터 스트리트 브랜드까지 넘나드는 노스페이스의 이러한 폭넓은 행보는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와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파타고니아에서 협업 컬렉션은 거의 보기가 어려운 대신(부츠 브랜드 대너와 낚시용 부츠를 내놓은 적이 있다) 소셜 액티비티, 지구 온난화, 노동 문제, 환경 문제 등에 활발히 개입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파타고니아는 협업을 통해 옷만 내놓지 않을 뿐이지 많은 사회적 이슈와 그와 관련된 이들과 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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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파타고니아 인스타그램.>

 

협업을 바라보는 시각

노스페이스와 파타고니아는 60년대 말, 70년대 초 미국에서 아웃도어 붐이 일어나던 시기에 론칭됐다. 그 이후 산에 가고, 암벽을 타고, 달리기를 하고, 스키를 타는 사람들을 위한 엇비슷하게 생긴 옷을 수도 없이 내놓았다. 한 시절 꽤 인기가 있었고, 또 어떤 시절에는 중년, 40대를 위한 패션 브래드 이미지를 가진 적도 있었다. 패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이런 이미지들은 사람들 사이에 각인돼 있다. 

 

이렇게 굳어져 가는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고 정교하게 설계한 새로운 이미지를 전개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 브랜드는 사회의 변화에 패션이 적응하는 방식, 패션 혹은 사회에 대한 태도, 그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일, 협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식 등 브랜드가 구축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상당히 잘 보여주고 있다. 

 

하던 것을 계속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패션을 찾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이야기를 갖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런 태도를 보여주는 방식이 현대의 협업이다. 소비와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문화 활동이 결합되어 있는 지금, 협업은 패션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며 즐기도록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다.

경력사항

  • 패션칼럼니스트
  • 패션붑(fashionboop.com) 운영.
  • 現 한국일보 패션 칼럼니스트
  • 2018년 ‘레플리카’ 저서
  • 2016년 ‘패션 vs 패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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