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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서의 고급 아비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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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훈 동인인터내셔날 ‘2XU’ 본부장 (jihpark07@gmail.com) | 작성일 2021년 01월 25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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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과 소득의 증가는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에서 동일한 양의 재화를 소비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 사회가 문명의 이기를 함께 누리며 점차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안타깝게도 완벽하게 형식적인 소비의 민주화를 의미한다. 나아가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을 포함해 매장에 들어가 점원의 응대를 받으며 구매한 물건의 사후처리를 포함한 모든 소비활동의 총체를 통해 소비 그 자체는 계층 간의 구별짓기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오늘날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자동차를 구매할 수가 있다. 추운 겨울날 히터를 틀고 음악을 들으며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나를 데려다 주는 소비재로서 자동차를 생각하면 형식적으로 소비의 민주화가 이루어 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 배기량, 컬러, 심지어 그 자동차가 세단이냐 SUV냐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계층 나누기는 우리가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모두가 느끼고 이미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취향은 개인이 타고난 독자적이고 주관적인 심미적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애석한 일이다. 

 

개취로 포장된 아비투스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짓기’에서 아비투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아비투수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취향으로 정의하기에는 다소 복합적인 의미가 포괄되어 있어 이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 요컨대,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또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아니면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 등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habere(갖다)’에서 왔다. 잘 알고 있는 ‘habit’과 어원이 같으며 습관이라는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추론 가능한 단어다. 우리가 개인의 취향, 개취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상상해 보자.

 

축구나 복싱을 즐기는 사람과 펜싱이나 승마를 즐기는 사람. 바흐의 평균율이나 왼손을 위한 오른손 피아노 협주곡을 좋아하는 사람과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뮤지컬이나 전시회를 관람하는 사람과 할리우드에서 만든 블럭버스터를 좋아하는 사람. 아웃렛에서 판매하는 기성복 정장을 구매하는 사람과 수미주라나 비스포크 정장을 맞추는 사람. 이런 것들이 개인의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으나 사실 아비투스에 의해 결정되는 것들이라면 받아들이는데 마음이 불편하고 시간이 걸린다. 펜싱이나 승마, 클래식 음악 등은 어린 시절부터 수준 높은 교육과 환경에 노출되어 개인에게 체화됐을 때 즐길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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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경제적 계급으로 나누고 위에서 열거한 것들 중 개인이 오랜 시간 장비와 돈을 투자하고, 원하는 시간에 즐길 수 있는 행위들을 고급 아비투스로 분류했다.> 

 

아는 만큼 보이나니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경제적 계급으로 나누고 위에서 열거한 것들 중 개인이 오랜 시간 장비와 돈을 투자하고, 원하는 시간에 즐길 수 있는 행위들을 고급 아비투스로 분류했다. 물론 고급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이 영화를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사람들도(부르디외가 상위 계층으로 분류한 고급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들) 어벤져스 인피니티워를 재미있게 보고 마블의 유니버스를 탐구하며 블랙위도우가 하루 빨리 개봉하기를 바랄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사람들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 언제 전시되는지를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밀라노 라스칼라에서 지젤을 본 적이 있다. 한치 흐트러짐 없는 라스칼라 단원들의 몸동작과 스테이지가 통으로 전환되는 화려하고 정교한 무대장치를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기는 했으나 온전히 공연을 즐기지는 못했다. 내가 아는 발레의 유일한 동작은 아라베스크이며(심지어 이것도 내가 일했던 브랜드 ‘프레디’의 로고가 아라베스크에서 왔기 때문에), 설령 그 동작을 안다고 해도 아라베스크가 무엇을 의미하는 동작인지 그 아름다운 선을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드는 건지, 저 동작은 도대체 어떤 음악에 어울리는 것인지 도통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자막 없는 프랑스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장면이 교체되고 독특한 카메라 앵글과 프랑스 여배우 특유의 순수함과 관능미를 동시에 관찰하는 재미는 있겠으나 그 영화에서 어떤 감동도,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한 줄도 얻지 못할 테니까. 

 

무엇이든 알고 보면 아는 만큼 더 재미있는 법이다. 르네상스 이전의 서양 미술은 대부분이 기독교 신학과 관련된 작품들이다. 각자 믿고 있는 종교를 떠나서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이 르네상스 이전의 미술 전시를 관람한다는 것은 다리 아프고 지루한 일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한참을 올려다봐야 볼 수 있는 압도적인 크기의 그림이거나 절대주의 미술의 정교함에 놀랄 만한 것들뿐이다. 바티칸 시국의 시스타나 경당에 그려져 있는 천지창조 프레스코화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단순히 취향의 문제라고 부르겠는가?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드러내는 것

여기까지의 생각을 정리해서 나는 아비투스를 ‘한 개인을 둘러싼 교육이나 환경으로부터 형성되고 스스로 배우고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 사람에게서 또는 그 사람과 유사한 환경의 집단에게서 드러나는 행동양식 혹은 그 또는 그들이 내뿜는 기운’이라고 정의한다. 아비투스는 패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옷은 아무리 많이 사도 고급 아비투스를 드러낼 수 없다. 사고방식은 말로 드러나고 생활패턴은 몸에서 드러난다. 옷은 신체 자본의 보조적 역할로서 그 사람의 생활패턴이 고급스럽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고급 아비투스를 드러낼 방법이 없다. 

 

때때로 옷보다는 가방, 가방 보다는 시계가 더 값어치 있는 이유는 고급 아비투스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흥 갑부의 딸이 새로 산 신상 벌킨백은 고급 아비투스의 상징이 아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오이스터 퍼페츄얼 캘린더는 고급 아비투스이다. 오죽하면 ‘강남졸부나 중국갑부’라는 왜곡된 우회적 표현이 있겠는가. 

 

패션으로서 소비의 만족은 당연히 자기만족이 우선이겠지만 내가 둘러쓴 물건들을 통해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패션으로 보여지는 고급 아비투스를 위해 우리는 좀 더 세련된 것에 투자해야 한다. 어차피 경제자본이 부족하다면 이것을 대신 채워줄 문화자본, 지식자본, 언어자본 같은 것들을 익히고 체화하는 노력이다. 좋은 옷을 걸쳤지만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드러내는 것. 이것이 패션에서 고급 아비투스다. ​ 

경력사항

  • 現) 동인인터내셔날 2XU 사업부장
  • 前) 더네이처홀딩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CD
  • 前) 네파 상품기획 팀장/유럽프로젝트장
  • 前) 인디에프 ‘프레디’ 상품기획 팀장
  • 前) 데상트 ‘르꼬끄 스포르티브’ 상품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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