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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지만 매력적인 복고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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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지후 한성대 디자인 교수 (fpost@fpost.co.kr) | 작성일 2020년 02월 24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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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시절 학교 선배를 따라 인사동, 그것도 찻집이라는 곳에 처음 갔다.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는 아닌 듯 한데 마셔본 차는 없어서 메뉴판을 한참 공부한 후에야 국화차를 주문했다. 잠시 후 내 앞에는 묵직한 도자기 잔이 놓였고, 뚜껑을 여니 마른 풀같이 생긴 것이 동동 떠 있었다.

 

조금 기다렸다 마시라는 선배 말에 잠시 있으니 꽃잎이 하나둘 벌어지며 곧 찻잔 가득 국화꽃이 피어났다. 태어나서 처음 본 신기한 장면에 감동하며 차를 음미했다. 

 

코로는 은은한 국화 향을 느끼며, 입으로는 자꾸 들어오려 하는 꽃들을 연신 후후 불어대며 한껏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선배가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필터를 꺼내고 마셔야지.”  

오래된 것에 대한 그리움, 복고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 또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빨리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누구나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 싶다. 

 

복고(復古)의 원래 의미는 과거의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모양새 따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중문화에서는 주로 한때 유행했으나 흘러가버린 옛 여러 가지 요소들이 다시 유행하게 되는 현상을 두고 복고, 레트로(Retro, Restoration)라고 말한다.  

 

나에게 복고의 향기는 종종 원초적인 본능에서 시작된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닫혀 있던 다락방을 열었을 때 훅 들어오는 먼지 냄새, 한쪽 끝이 살짝 말아 올라간 중고서적의 책장을 넘길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눅눅한 기운, 빛이 들어가 반쯤은 바래진 흑백사진 등 세련되진 않으나 투박해서 더 좋다.

 

사실 복고는 우리 것이 아닌 듯 우리 것이다. 복고는 오래된 것에 대한 그리움이자, 지금은 멀어진 것들에 대한 향수다. 그래서 요즘은 옛 풍경과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인 ‘레트로 플레이스’가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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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지로>

 

어른들의 아지트 ‘힙지로’

하루가 멀다 하고 첨단 테크놀로지와 트렌디한 신문화가 쏟아지는 이 시대에 여전히 쌍화차를 팔고 있는 한옥 카페, 산동네를 따라 이어지는 오래된 골목길, 전쟁 이후 옛 풍경이 간직된 박물관 마을이 있다.

 

최근 들어 을지로는 ‘힙지로’로 불리며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등장했다. 간판을 달지 않은 점포가 많아 초행길인 사람은 길 찾기가 어렵고,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다는 이 점이 오히려 매력으로 어필되고 있다. 유년시절에 어른들 모르게 단짝 친구들하고만 드나들었던 ‘나만 아는 가게’ 혹은 ‘우리들만의 아지트’처럼 비밀스럽다.

 

새로운 느낌을 칭하는 젊은이들의 언어인 ‘힙(hip)’과 ‘을지로’의 합성어인 ‘힙지로’라는 말 자체가 을지로에 불어온 새로운 복고 바람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셈이다. 좁고 긴 통로와 오래되고 허름한 건물 외관과는 다르게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조명과 음악, 감각 있는 소품들, 젊은이들의 열기로 넘친다. 

 

마을 전체가 박물관으로 변신

서대문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돈의문 옆에는 조선시대 동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여긴 ‘돈의문 박물관마을’이 있다. 한 때는 과외촌으로, 한 때는 골목식당으로 유명했던 이 곳이 2003년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함께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옛 것은 일단 밀어버리고 마는 국내 재개발의 폐해가 다행히 이 곳은 비켜갔다. 기존 건물을 보수하는 도시재생방식으로 진행돼 마을 전체가 박물관처럼 변신했다. 

 

마을에는 지역의 역사와 재생을 소개하는 전시관이 있고, 전통문화 체험공간인 한옥이 있으며 곳곳에 60~80년대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 있는 공간을 볼 수 있다. 그 시절 그 곳에 살았던 부모가 해설사가 되어 자녀들에게 직접 근현대사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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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정산복도로>

 

좁은 골목길과 한옥 카페에서 느끼는 옛 정취

부산 동구 백제병원이 있던 부근에는 골목길이 이리저리 연결된 ‘산복도로’가 있다. 산 중턱을 휘감으며 도로가 이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동네는 한국전쟁 때 갈 곳 없는 피난객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급격한 개발로 옛 정취를 다 잃어버린 대도시와는 달리 좁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21세까지 넘어오는 유산들이 적잖이 남아 있다.

 

흙먼지 나는 땅에서 놀며 자란 50~60대에게는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고향 같다. 개발을 최소화한 마을 재생 사업인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 덕분이다. 

 

걷기 싫어하는 이들을 위한 ‘이바구 자전거 투어’도 마련돼 있다. 문화재 해설사가 관광객을 전기 자전거에 싣고 이동하면서 지역 명서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경기도 성남시 오야동은 서울 강남의 세곡동과 맞닿은 곳이다. 경주 이씨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는 이 곳에 ‘새소리 물소리’라는 한옥 카페가 있다. 

 

1923년에 이씨 후손이 지은 전통 가옥으로, 산자락에 기대어 있는 한옥 주변에는 작은 대숲이 있고 300년 넘은 느티나무와 팔각정자가 있다. 한옥 바로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전래동화에 나올 듯한 돌다리가 몇 개 놓여 있다. 방에 들어서면 요즘 보기 드문 두툼한 방석이 놓여 있다. 한옥의 정취가 듬뿍 담긴 이 곳에서 대추차나 쌍화차를 마셔도 좋고, 달달한 단팥죽과 몰랑몰랑한 경단을 함께 먹어도 좋다. 

 

이처럼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둔 서랍을 하나씩 하나씩 열어보는 고즈넉함이 우리가 복고를 찾는 이유가 아닐까? 어느 볕 좋은 날, 백년 한옥 툇마루에 앉아 안뜰을 내려다보며 가배차를 천천히 마셔보고 싶다. 별다방의 별스러운 커피와는 전혀 다른 맛이리라. ​ 

(주)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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