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제이에이치 김

주얼리 ‘레브’ 론칭한 父子 동업자 > PEOPL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PEOPLE

주얼리 ‘레브’ 론칭한 父子 동업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채연 기자 (mong@fpost.co.kr) | 작성일 2021년 06월 18일 프린트
카카오톡 URL 복사

본문

인터뷰 - 제이에이치 김재봉, 김종필 공동 대표


78a8d55c64dc94aa16bb7ada69402fbe_1623561871_5308.jpg


40년 경력의 주얼리 匠人 아버지

잘 나가는 무역상 아들의 끈끈한 패션사업 同業記​ 

“국내 최고의 주얼리 제조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서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사업은 항상 어려운거지만, 묵묵히 하다보면 찬스는 한 번씩 와요. IMF때도 그랬고 중소기업들이 지금 코로나로 아주 힘들어. 그런데 인건비 무섭다고, 당장 얼마라도 아끼자 그러면 아무 일도 안 되는 거야. 인원감축 막 해놓고 다시 일감이 들어오면 숙련자들이 떠난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가 없어.”

 

 

국내 최대 귀금속 체인 제조사 제이에이치의 창업자이자 공동 대표인 김재봉 대표는 “어려워도 (공장)식구들 다 데리고 같이 가야지, 아무리 어렵기로서니 사장이 직원보다 어렵기야 하겠나”라고 했다. 

 

제이에이치는 1999년 설립된 장흥금속이 모태로 2019년 법인으로 전환했다. 국내 유수의 브랜드들에게 귀금속 체인을 공급하는 것이 주요 사업이지만, 의뢰에 따라 장식물을 더해 완제품으로도 공급한다. 

 

지금 제도권에 있는 브랜드, 그들의 협력사까지, 제이에이치의 거래처가 아닌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JCK, VICENZAORO 같은 국제 주얼리 전시회에서도 디자인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세계 최고의 체인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에도 제이에이치의 제품이 수출된다. 

 

귀금속 제조 1세대, 현재 규모와 기술력에서 국내 최고라는 소문을 익히 들은 데다, 그런 회사가 패션 주얼리로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니 작업 현장을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회사의 업력도 20년이 넘었지만, 만 46년 동안 한우물만 파온 귀금속 장인(匠人)이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무엇이 아쉬워 새 일을 벌이려는지 알고 싶었다. 

 

자신의 경험을 반추해 젊은이들에게 조언하고 때론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어른’을 만나기 힘든 패션업계의 모습이 서글펐는데, 원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귀하다.  

 

게다가 회사의 공동 대표가 부자지간이라고 했다. 김재봉 대표의 외아들인 김종필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를 다니다가 무역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상사를 창업했다.

 

일이 꽤 잘 되어서 자금이 모이자 본인의 사업체는 물론 직원들까지 모두 승계, 법인으로 전환하는 제이에이치에 정확하게 자본금의 절반을 납입하고 공동 대표가 됐다. 

 

보통 유학을 금방 마치고 돌아온 자녀에게 기획이나 마케팅부서장, 경영전략이나 영업본부장 자리를 내주고 후계 구도를 만드는 흔한 패션기업의 모습과는 다르다. 

 

78a8d55c64dc94aa16bb7ada69402fbe_1623561936_097.jpg
<만 46년, 귀금속 제조 한 길을 걸어 온 김재봉 대표(사진 왼쪽)와 

당당한 사업 파트너로 주얼리 브랜드‘레브’를 론칭한 김종필 대표. photo 모지웅 기자>

 

“부자지간이라도 동업자라면 계산 정확해야”

인터뷰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오피스가 아니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직영 공장에서 인터뷰 진행했다. 사실 주얼리 제조에 대해 편견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주얼리라는 것이 부피가 작고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니까 백발이 성성한 숙련공들이 공방 같은 형태로 작업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제이에이치 공장은 예상을 넘어서는 규모다.

 

어지간한 브랜드의 물류센터만한 규모에, 창고와 사무 공간 등을 제외하고 2개 층에 걸쳐 2백대 가까운 기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그 곳. 금, 은으로 만든 체인과 고리가 누군가 흘리고 간 물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이며 작업대 위에 널려 있다는 점만 빼면, 진정 ‘공업 현장’이다. 

 

첫 질문은 가업(家業)으로 이어진 배경일 수밖에 없다. 창업자에겐 50년 가까이 해 온 귀금속 기술자라는 일이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을 정도의 알짜배기인지, 공동 대표인 아들에겐 ‘어차피 내 회사’인데 직장생활과 개인 사업으로 모은 돈을 탈탈 털어 넣어 공동 대표가 된 이유 말이다.

 

두 명의 김 대표가 부자 관계인 것은 맞지만 기업 상속이니, 경영권 승계니, 부(富)의 대물림이니 하는 말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김종필 대표는 “사업 아이템은 분명 아버지의 역사가 켜켜이 깃들어 있는 최고 품질의 귀금속 체인이지만, 아버지의 회사에 기생한다는 것은 스스로 도저히 용납이 안됐다”고 했다. 

 

“현재는 아버지가 구매, 생산을 책임지고 제가 국내외 영업과 신규 사업을 책임지는 공동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큰 산 같은 존재로 존경하던 아버지에게 ‘브랜드 론칭을 해야 하니 돈 대시라’고 하면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가 없잖아요."

 

"거래선을 관리하고 ‘레브’를 전담하는 신사동 사무실 유지와 직원들 급여 등 운영비 일체도 독립체산제로 해결합니다. 이전에 아버지의 체인을 수출했는데, 그 어떤 거래처보다 칼 같이 결제했고 그걸 아버지도 당연하게 생각하셨어요."

 

"아직 멀었지만 기계를 다루는 법, 원재료를 배합하는 노하우 등 현장을 아버지께 공짜로 배우고 있으니 그건 특혜네요(웃음).”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듣고 있던 김재봉 대표는 “사업 잘하고 있다가 왜 아버지와 힘든 일을 하냐고 말렸던 엄마도 지금은 손발이 잘 맞는다고 한다”고 보탰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금 무얼 하는지, 왜 하는지,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왜 그만큼이 들어가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도 아버지에게 업무 자료를 공유하고 정확하게 셈을 할 뿐 동업자 이상의 요구를 하지 않는다. “맡겼으면 믿어 줘야지”, 아버지의 말이다.   

 

78a8d55c64dc94aa16bb7ada69402fbe_1623562013_0197.jpg

<아버지는 생산을, 아들은 국내외 영업과 신규 사업을 분리해 책임지지만, 틈틈이‘과외 학습’이 이루어 진다.>

 

만 46년, 귀금속 체인만 만들었다

김재봉 대표는 생산라인과 설비 설계부터 200여대의 기계 전부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 동력장치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계의 부품 하나하나까지, 김재봉 대표가 다듬고 벼려 만들었다. 특허 기술도 여럿이다. 

 

“소비자 취향이 다양해지니까 디자인도 다양해져야 하잖아요. 다양한 디자인을 소화하려면 주요 부품을 하나하나 다 새로 만들어야 되거든? 기계 세팅하는 그 기술이 우리만의 경쟁력이지. 액체 상태인 원자재를 배합하는 노하우도 우리를 따라올 회사가 잘 없어요. 지금 같이 일하는 우리 기술자들 절반은 창업 멤버고 최소 10년 이상 같이 호흡을 맞춘 사람들이라 거래처들도 더 믿어주는 거고.”   

 

그는 어떻게 이 업계에 들어서게 되었을까. 1974년 12월, 당시 막 중학교를 졸업한 소년 김재봉은 고향인 전남 장흥을 떠나 도시로 올라왔다. 진학보다 생계를 돕고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것이 급한 시절, 지인 소개로 한참 잘나가던 삼영금속 3공장에 들어가 가장 밑바닥 일을 맡는 ‘시다’가 됐다고. 

 

삼영금속은 우리나라 산업화 초창기, 전국에 21공장까지 두고 도금 목걸이를 수출하던 세계 최대 금속 체인업체였다.  

 

12시간씩 교대로 돌아가는 근무, 때론 매를 들며 몰아치는 선배들 밑에서 한 달에 딱 이틀만 쉬고 3,800원의 월급을 받는 고된 일상이었지만 악착같이 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수년을 버티고, 몇 군데 회사로 스카우트되며 ‘숙련공’이 되자 기술을 믿고 사업을 시작했다. 자재 값이 많이 드는 귀금속 제조업을 빈손으로 시작하니 실패도 여러 번, 당시 호남금속(지금의 미니골드다) 자재실장으로 들어가 와신상담했다. 우여곡절 끝에 호남금속에서 기계 3대를 빌려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김재봉 대표는 “기술이 있고, 바이어도 있으니 내 체인을 개발해서 팔고 싶었다”고 했다. 

 

장흥금속이 출발하면서 결혼 전엔 직장동료였던 부인도 뛰어들었다. 지금 사모님은 제이에이치의 최고참 기술자이면서 자타공인 ‘한국에서 가장 손과 눈이 빠른’ 검수책임자다.

 

“보통 비숙련 기술자 한 명이 7대의 기계를 관리하는데, 난 지금도 그렇고 100대고, 200대고 기계를 꿰고 있어서 속도가 좀 났지. 한 5년 지나 자리를 잡았어요.”

 

2004년, 현재 부지를 매입하고 공장을 지을 계획을 세웠는데, 땅 주인이던 지인은 잔금도 치르기 전에 등기를 이전해 줄 정도로 김재봉 대표의 기술과 추진력을 신뢰했다고 한다.   

 

78a8d55c64dc94aa16bb7ada69402fbe_1623562038_439.jpg

<레브 2021 SS 컬렉션.>

 

사람들의 반짝이는 꿈을 응원하는 브랜드

8090년대, 아버지나 어머니가 사업을 하시는 친구들 거의가 한 번 쯤은 집 안 곳곳에 빨간 딱지(차압)가 붙는 경험을 했었다. 별 탈 없이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면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다 벌이가 나은 것이 사업이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본인의 나이보다 더 오래 귀금속 제조를 해 온 아버지가 IMF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부침을 겪어내며 채권자에게 시달린 경험을 한 번은 해봤을 김종필 대표.

 

굳이 제조업에 뛰어든 이유가 무얼까. 오랜 신뢰를 쌓은 거래처들, 탄탄한 기술력,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황인데 책임감을 떠안고 브랜드 론칭을 하다니. 

 

“애초에는 무역 업무를 정말 좋아했고, 경험도 있고 자신도 있어서 아버지가 만든 체인이 핵심이 되는 홀세일 브랜드를 만들어 수출을 더 많이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가업을 잇겠다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죠. 그런데 론칭을 준비하면서 D2C까지 염두에 두고 브랜딩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구요. 

 

주얼리라는 품목은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표현 하는 수단, 누군가에게는 부의 상징, 누군가에게는 자신감을 올리고 싶은 마음 등등 여러 의미를 가지잖아요?

 

제가 겪은 국내 주얼리 산업은 디자인을 하고, 제조를 하고, 마케팅 및 유통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소비자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수익과 판매에 매달리다보니 그 기업만의 특색이 보이질 않아요. 그래서 우리만의 색을 내고, 소비자의 꿈과 희망을 함께 하는 콘셉트의 브랜드를 만들어보자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데미 파인 디자인 주얼리 ‘레브(reve)’다. 보통의 사람들이 작지만 소중하게 간직한 꿈과 반짝이는 희망을 제품화하고 싶어서 브랜드명도 ‘꿈’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지었다고. 

 

‘레브’는 키네틱 아트가 보여주는 미학을 콘셉트로, 주요 디자인 요소인 선(線)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체인이 코어 디자인이다. 특히 착용자가 한 가지 아이템을 여러 방법으로 연출할 수 있도록 소재 조합을 포함한 리버서블(reversible)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이 특징.

 

올 4월 말에 국내 B2C 공식사이트를 오픈하며 론칭을 알렸지만, 원래 해외시장이 주 타깃이었기 때문에 이미 작년 2월부터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세일즈를 진행 중이다.

 

뉴욕패션위크 기간에 맞춰 소호에서 마켓데이를 개최했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강남구청이 지원하는 ‘K-스타일 브랜드 북미마켓 진출사업’에 선정됐다.

 

현재 뉴욕 K-스타일 전문 플랫폼사인 더스타일케이(TheStyleK)에 입점해 온, 오프라인에서 B2B2C를 공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현지 B2C 쇼룸에서도 벌써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한명이 3-4개 아이템, 120만 원씩 구매하는 단골도 여럿이 생겼다. 

 

국내에서는 우선 자사몰 오픈 이후 더블유컨셉 등 전문몰 입점을 계획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나갈 계획. 중장기적으로는 ‘세포라’처럼  여러 콘셉트의 주얼리를 한 매장에서 소개하는 주얼리 편집숍 프랜차이즈 사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제조와 수출입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온 회사지만, 기업은 항상 변화하고 발전해야 해요. 그것이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론칭 이유를 한 가지만 꼽는다면, 아직 전 세계 주얼리 시장에서 국내의 우수한 기술력과 디자인 능력이 충분하게 알려지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레브’가 그 첨병이 되었으면 합니다.”

 

78a8d55c64dc94aa16bb7ada69402fbe_1623562297_8628.jpg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제이에이치 공장에서 귀금속 체인을 만드는 기계를 손보고 있는 김재봉 대표와 지켜보는 김종필 대표. photo 모지웅 기자>

 

 

사람과 환경, 회사에 이로운 구상을 한다

우리 패션시장은 옷이며 액세서리를 막론하고 유행에 민감하고 생명주기가 짧다. 특히나 디지털 네이티브, 온라인 플레이어는 포털의 가격비교, 과도할 정도의 정보 노출로 더더욱 기복이 심해졌다.

 

반면 ‘레브’는 만듦새와 지향점이 오히려 전통적인 제조업에 더 가깝다. 국내에선 온라인 시장을 우선 공략하고 있는 ‘레브’가 늦지 않게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을까?

 

김종필 대표는 “꾸준하게 존재의 이유를 드러낼 수 있는 브랜드라면 온라인에서 승부해볼 만하다”고 했다.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나고, 없어지고를 반복하고 있죠. 사실 전통방식이란 건 속도감이 낮을 수 있어요. 반면 꾸준함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희는 얄팍하게 휘둘리지 않고 소비자와 꾸준하게 교감하는 브랜드로 가려고 해요. 물론 SNS 마케팅이라든지, 도구는 현실의 것을 능숙하게 쓸 수 있어야죠.”  

 

- 브랜드 창업 초기의 결핍, 자본과 인력 부족을 어떻게 극복하고 계세요? 

“초기엔 제가 모은 자본을 동원했고, 이후에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한 정부지원자금을 활용해 극복하고 있습니다. 인력은 현재 함께하고 있는 직원들이 출중한 멀티 플레이어라서(웃음). 우리 브랜드가 가진 힘의 원천이 바로 그들이에요. 회사의 비전에 공감하고, 브랜드 사업에 열정과 애착을 가져주기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가 있는 거죠.”

 

- 제조와 디자인력, 품질은 신생 브랜드의 그것과는 차별화되어 있으니, 시스템적으로 추진하는 업그레이드 방향이 있다면요?

“주얼리 업계의 제조방식은 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규모가 있는 제조 공장이라고 해도 대다수가 오래된 관리 방식을 따르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수작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죠. 저희는 지금 스마트 팩토리를 추진하고 있어요. ‘노동을 줄이는 스마트’ 보다 사람의 기술을 보다 이롭게 쓰도록 하는 작업으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오염을 더 줄여야 하고, 그렇게 자원 유실을 최소화해 꼭 필요한 만큼 수익성을 높이는 거죠.”

 

김재봉, 김종필 부자 사업가는 회사가 가진 기술력, 비젼과 함께 같이 오래 근무해 온 직원들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것이 특별하게 보였다. 김재봉 대표는 서울 신림동 작은 공장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출퇴근 거리가 멀어 눈물로 이별한 4명의 ‘아줌마 기술자’들이 지금도 미안하고 아깝다고 했다. 

 

“워낙 없이 시작해서 그런지 어려운 가운데 조금씩 나아졌고, 귀금속이라는 것이 단가 좀 있다 보니까 직원들 원급 못 줄 정도로는 안했어요. 직원 없으면 회사가 굴러 갈 수가 있나? 기본인 월급은 지켜줘야지요."

 

 78a8d55c64dc94aa16bb7ada69402fbe_1623562332_8038.jpg 

<레브 2021 SS 컬렉션.>

"2018년에 이제 내년에 법인 전환 하니까 개인사업자일 때 좀 수월하게 퇴직금 정산해 주자하고는 아파트 팔아서 시골 주택으로 옮기고 깔끔하게 직원들 정산해 주고 출발했지. 지금은 주52시간 근무제, 정부 고시 최저임금, 이런 거 철저하게 지키고 있어요."

 

"인건비로 망한다, 생산성 떨어진다 걱정하는 사람들도 좀 있는데, 우리가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해. 근데 사람값 뚝 잘라서 저가로 들이치던 군소 공장들이 코로나 때문에 또 사람 잘라내더니 일도 봇따고 결국 정리가 되어 버리잖아. 덕분에 우리에겐 득이 됐지만, 그렇게 사람값을 제대로 쳐주지 못하는 회사는 자라더라도 뿌리를 못 내리고 흔들려 버리지.”    

 

인터뷰 말미, “후회도 미련도 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회상하는 김재봉 대표에 이어 김종필 대표에게 물었다. 먼 미래에 어떤 경영자로 평가받고 싶은지, ‘레브’라는 브랜드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길 원하는지. 

 

“함께한 직원들이 ‘우리의 꿈과 희망을 존경하고 이뤄주는 경영자이자 진실한 인간이었지’라고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많이 노력해야 되겠죠(웃음). 일상을 살아가면서 현실의 고달픔을 겪을 때, 문득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구나, 그래도 희망이 있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어떤 이벤트나 물건이 있잖아요? ‘레브’는 그런 울림을 전하는 브랜드로 만들어 나갈 거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SP 연재

POST
STAND
(주)다음앤큐큐

인터뷰

패션포스트 매거진

63호 63호 구독신청 목차 지난호보기

접속자집계

오늘
3,460
어제
4,044
최대
14,381
전체
1,924,385

㈜패션포스트 서울시 강서구 마곡중앙로 59-11 엠비즈타워 713호
TEL 02-2135-1881    FAX 02-855-5511    대표 이채연    사업자등록번호 866-87-01036    등록번호 서울 다50547
COPYRIGHT © 2019 FASHION POS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