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튜디오 케이’ 디자이너 홍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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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프로젝트 매니저 겸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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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채연 기자 (mong@fpost.co.kr) | 작성일 2020년 10월 13일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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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튜디오 케이’ 디자이너 홍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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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S/S 시즌의 ‘더 스튜디오 케이(The Studio K)' 런웨이. 어린 시절 문방구 앞에 친구들을 옹기종기 모이게 했던 게임기 속 세상처럼, 알록달록한 블록들이 쌓여 익숙한 학교 풍경을 만들더니, 금세 테니스장이 되었다가, 다시 풀 파티가 열리는 수영장으로 바뀌는 3D 가상공간이 펼쳐진다. 

다음 시즌 런웨이는 좀 더 SF적이 된다. 미디어아티스트 빅터 장과 협업해 현실 런웨이를 홀로그램 3D 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한 것인데, 더 스튜디오 케이가 제공한 작은 장치(마분지와 다면거울이 있으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위에 패션쇼 영상을 실행시킨 모바일 폰만 올려놓으면 요다, 오비완 케노비 소환하듯 홀로그램 패션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2019 S/S 시즌에는 ‘SinK’를 주제로 관객참여형 프레젠테이션을 시도한다. 이 신개념 전시에서는 17명의 셀럽, 일반인, 모델이 참여한 26가지 버전의 룩 북과 가장 아름다운 서울의 찰나를 매치한 미디어 콜라주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관객이 원하는 배경과 모델을 골라 즉석에서 콜라주 아트워크를 만들어 줬다.  

모든 행사가 전면 취소된 올 봄의 코로나 충격에서 간신히 헤어 나온 가을 패션쇼와 트레이드 쇼는 온통 ‘디지털’ ‘온택트’ 타이틀을 내걸었다. 전 세계가 같은 상황이어서인지, 온라인으로 패션쇼를 보여주고, 바이어와 상당을 하고, 소비자 판매도 한다는 포맷은 이미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판로 확보가 어려웠던 디자이너 브랜드에게 오히려 비대면의 시대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와 상응하는 노력을 놓을 순 없다. 과연 우리만의 경쟁력을 가질 수는 있을까. 

사실 이 이슈를 가지고 인터뷰할 디자이너가 딱 한사람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디지털 패션쇼를 실험했고,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지난 시즌의 놀라움 +α’를 보여주고 있는 아티스트메이드 홍혜진 대표다. 그는 이달 17일 공개 예정인 새 컬렉션 준비에, 추석 즈음 이전한 새로운 사무실 정리에 치여 있었음에도 오랜 시간 진지하게 마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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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SS collection Self-Reality>

- 패션 디자이너가 왜 본업보다 IT에 신경을 쓰나, 그런 질문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선구자가 될 수도, 실패의 본보기가 될 수도 있잖아요
“호기심천국, 그게 제 별명이에요(웃음).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 거죠. 어떤 카테고리에 관심이 생기면 ‘일단 해 보자’가 되요. 제 캐릭터가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아는 패션 디자이너들은 대체로 ‘클래식 함’에 대한 동경이 있는데 전 아니거든요.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가까운 미래’에요. 특별한 목적이 있거나 직업적으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인간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말이죠. 시대의 요구도 그렇죠. 패션 디자이너가 알아야하고, 시도하고, 잘해내야 하는 것이 점점 늘어나요. 그러다보니 요즘 저의 정체성이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 같아져요. 사람들에게 ‘PM으로 신분세탁 중’이라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하고요(웃음).”

- 그럼 최근에 가장 호기심을 가진 분야는 뭔가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도대체 뭘까, 그걸 알아내는 취향 큐레이션이에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고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풀이하는 등등. 투자도 많이 했죠. 지금은 정확도가 좀 떨어지지만 몇 년 후면 취향 예측 정확도를 90%대까지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홍혜진 대표는 실제로 패션 테크 분야에 단순 호기심 이상의 공부와 R&D 투자를 해왔고 개발자 그룹, 관련업계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 패션, 특히 디자이너 레이블은 사람들의 감성과 욕망을 자극해야 하잖아요. 근데 디지털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하늘에 뜬 구름을 보고도 컬렉션 영감이 떠올랐다는데 전 너무 현실적인가 봐요. 저의 컬렉션 영감은 언제나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거기에 R&D를 결합해서 얻어진 것이에요. 런웨이는 시간과 사람의 노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걸 고민한 결과죠. ‘이 바쁜 사람들을, 10~15분 패션쇼를 보여주려고 모이게 하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미디어 래핑 퍼포먼스라든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기술적 관심이 영감인거죠. 개발자, 스타트업들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기술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룰 거니까.”

- 이제까지의 노력으로 돈도 좀 버셨는지 궁금하네요
“원래 무모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웃음). 매출이 오를 때 유보금도 좀 만들어 놓고 유동성 관리를 타이트하게 했었어야 하는데 뭐가 생기면 R&D에 막 쏟아 부은 거죠. 관심 있는 장비, 솔루션을 도입하고 활용해 볼 수 있다는 데에 꽂혀서(웃음). 패션 테크를 꾸준히 시도해 왔고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는 건 천만 다행이죠.” 

- 새로운 전문 분야를 계속 파고들 수 있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거죠
“전 일이 무섭지 않아요.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잖아요(웃음). 엄청난 압박을 받는 순간에도 정말로 무심한 듯 시크해 보이는, 현역 시절의 김연아 선수를 너무 좋아했고 제 롤 모델이기도 해요. 전 그런 대인배는 못되었죠(웃음). 

패션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터로서 분명히 예민하고 세심한 것이 미덕이에요. 반면 경영자로서 과감함이 필요한데 다 잘해내기가 힘들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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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FW collection Real Fake>

- 곧 서울패션위크도 개막이고, 전부 디지털 패션쇼로 진행되잖아요? 럭셔리 패션하우스만큼 브랜드 파워가 없는데 확장성이 있을지…. 화상상담은 시도 수준일 것 같구요.

“저는 서울을 너무나 사랑하는 디자이너에요. 사대주의는 버릴래요. 난 서울에 있는데, 파리나 런던, 밀란, 뉴욕패션위크와 다르다고, 그만 못하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들은 그들의 플랫폼에서, 그들에게 맞춘 폼(form)이니까 잘하는 거죠. 우리도 우리가 만든 폼에선 제일 잘할 수 있어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유연하고 IT 자원도 풍부한 서울에서,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면 되요. 디지털, 테크를 접목하는 건 코로나 이전부터 대비 해왔던 것들이에요. 코로나가 적용 시기를 확 당겨서 좀 무섭긴 하지만 기회이기도 해요.”  

- 우리만의 경쟁력은 어떻게 찾아야 하죠 
“지금은 과도기에요.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던 세상이니까 정답도 없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보단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에게 맞는 방법을 더 다양하게 찾고 시도해봤으면 하는 거에요.”

- ‘더 스튜디오 케이’의 시도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프리젠테이션과 큐레이션이 결합된 형태, 전 여기에 관심이 있어요. 예를 들어 오프라인에서 쇼를 하는 동안 런웨이를 지켜보는 바이어, 미디어, 일반 소비자 각각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버츄얼 패션쇼를 하는 거죠. 런웨이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델을 스마트폰으로 비추기만 하면 각각의 레이어가 뜨도록 말이죠. 디지털 패션쇼라면 3D 가상 피팅을 보면서 전자 스와치로 원단의 재질감, 감촉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던가.”
 
-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이야기 같은데요
“지금 이야기한 것을 구현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아요. 이미 햅틱(Haptic, 촉감을 이용한 기기 제어 기능) 기술로 촉각센서가 나와 있고 시연도 해봤어요.”

- 굉장한 퍼포먼스이긴 한데 실제 사업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촉각센서의 경우 상용화까진 시간이 필요하고, 사실 바이어가 실물을 보지 않고 오더를 한다는 건 어지간히 신뢰가 쌓인 관계가 아니면 어렵긴 하죠. 하지만 여러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되요.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의 패션위크는 이전의 패션위크와 같지 않을 거에요. 사람들은 이미 경험한 새로운 것, 편한 것을 포기하지 않거든요. 미국의 상황을 보면 오프라인 몰과 백화점의 공동화가 너무 급격하고 빨라요. 디자이너들이 선망하고 입점 기회를 고대했던 ‘유서 깊은 럭셔리 유통’들이 사라진다는 거죠. 소비자가 떠나는 거에요. 이미 바이어도 변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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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황현상 기자>

- 오프라인 진입장벽은 무너지지만 온라인 유통 권력은 더 강화되는 것 아닌가요
“서글프지만 플랫폼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이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현실이에요. 나의 컨셉추얼한 옷을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플랫폼이 가진 자원을 활용할 수가 없어요. 플랫폼은 개성 넘치는 디자이너 레이블이 아니라 잘 팔리는 옷을 노출해야 되거든요. 그런 플랫폼의 니즈에 맞춰야 디자이너 브랜드도 세일즈를 할 수 있고…. 아마 그런 상황은 점점 더 심화될 거 같아요."

"컬렉션 디자이너로서의 자부심이 있는데 세일즈를 위해 플랫폼이 원하는 옷을 만들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죠. 하지만 어차피 시대가 바뀌었다면 방법을 찾아야죠. 저의 경우 옷은 플랫폼의 니즈를 수용하고 소비자 프레젠테이션에 콘셉트를 세게 녹이자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지금의 최선이다, 나만의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하자.” 

- ‘더 스튜디오 케이’는 포스트 코로나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요
“피유(Personal Uniform), 최근에 분리한 라인인데 애정을 가지고 만들고 있어요. 더 스튜디오 케이의 S/S, F/W 컬렉션을 베이스로 한 시즌 컬렉션이죠. 매출을 일으키는 B2C 캡슐 컬렉션이기도 하구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고(그는 사업 시작 전 7년 넘게 대학 강단에 섰다) 컬렉션을 만들고, ‘패션’이라는 울타리 안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 다른 환경의 일터와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궁금했어요. 옷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시각 정보를 준다고 생각해요. 찬찬히 관찰을 해보면 특정 직업군을 드러내는 어떤  스타일 경향도 있구요."

"그래서 책을 읽으며 세상을 읽듯이 유니폼 디자인으로 간접 경험을 해보고 싶었고, 꽤 적극적으로 유니폼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애썼어요. 직종이 가진 캐릭터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좀 많이 입혀진 것은 지금 하나은행의 유니폼, 최근엔 제네시스 플래그십스토어 유니폼 디자인을 했죠. 이달 17일부터 9일 동안 가나아트 사운즈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이런 생각을 확장한 프레젠테이션이에요. 원래는 이번 서울패션위크를 염두에 두고 기획했는데, 코로나 방역 때문에 DDP를 쓸 수 없게 되어서 장소를 바꿨어요.”

  홍 대표는 이번 전시가 코로나 상황에 가장 애를 쓴 의료진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메시지라고 했다. K방역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정도로 큰 희생과 헌신을 해주었는데, 왜 입으면 힘들고 불편한데 밉기까지 한 방호복으로 고생을 보태야 하나. 그래서 방호복이 갖춰야 할 기능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 착용감을 개선한 원단도 직접 개발했다고. 

“옷을 만드는 사람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과연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내내 부끄럽고 불편했거든요.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의료진의 헌신과 고달픔을 덜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동참할 수 있는 활동을 할 거에요."

"선후배, 동료 디자이너들을 위해서도 이제까지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앞서 배우고 시도하고 경험해 본 기술과 노하우를 다 공유하고 돕고 싶어요. 그래서 계속 프로젝트 매니저로 신분세탁을 하게 될 것 같아요(웃음).”   

지금 디자이너 홍혜진이 준비하고 있는 전시의 타이틀은 ‘spread of virtue’, 선행 전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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