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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문화는 설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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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UX’ 디렉터 (haklim.lee77@gmail.com) | 작성일 2021년 10월 11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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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언젠가 TV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새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과 함께 배우에 대한 소개가 나온 기억이 있다. 그에 대한 소개가 나올 때면 항상 붙는 ‘세계 최고의 연기력’이라는 수식어는 그날도 어김없이 등장했던 것 같다. 

이어진 코너에서는 당시 한창 유행하던 주말 드라마와 주연을 맡은 한 남자 배우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프로그램 진행자는 그의 연기에 대해 ‘최고의 연기력으로 이미 정평이 난 배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때 필자는 이런 고민을 했다. 

‘그러면 로버트 드 니로와 한국 배우 중 누가 더 연기를 잘하는 거지?’ 이런 류의 질문은 이후에도 계속 됐다. 

록음악에 심취해 있던 시절, 에릭 클랩튼이나 지미 핸드릭스 같은 명연주자들에게 ‘신’이라는 표현이 붙곤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들이 한국의 록음악 대부격인 신중현 씨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똑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아니, 그래서 에릭 클랩튼과 신중현 씨 중 누가 더 기타를 잘 친다는 말이죠?’ 

휘트니 휴스턴과 박정현 중에서는 누가 더 노래를 잘하고, 타이거 J.K와 에미넴 중 누가 더 랩을 잘한다는 건가요? 물론 이런 질문들을 ‘전문가’에게 해본 적은 없지만, 친구들과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할 때마다 만장일치의 결론을 도출하곤 했다. 

“에이, 그건 비교 대상이 아니지.”

오징어 게임 
잘 알려진 대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90개 국가에서 인기 1위에 올랐다.

덕분에 456억 원이 자국 통화로 얼마인지가 궁금한 나머지 구글 검색을 너무도 많이 해서 원화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검색된 통화로 기록됐다든지, 파리의 오징어 게임 체험관에 줄이 200미터가 넘어 7시간씩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한 바람에 새치기하는 사람들과 난투극이 벌어졌다던가 하는 신기한 뉴스가 잇따르고 있다. 

필자 역시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자마자 이틀에 걸쳐 몰아치듯 모든 에피소드를 시청했다. 몇 군데의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진행이나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설정 등을 차치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꽤 재밌게 손에 땀을 쥐면서 본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한 가지 “과연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 전체를 놓고 봐도 전무후무한 ‘최고’에 오를 만큼의 작품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오징어 게임 현상’이 자연스러운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넷플릭스 서비스 중 기존의 드라마 시리즈들만 놓고 봐도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위쳐(The Witcher)’ ‘나르코스(Narcos)’ 등 서사구조부터 캐릭터 설정, 아름답고 화려한 시각적 효과까지 이미 충분히 훌륭한 시리즈들은 차고 넘치기에 더더욱 요즘의 이 현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혹자들은 오징어 게임의 성공 비결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게임들과 ‘배틀 로얄’ 같은 시리즈 특유의 긴장감,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의 서사라고도 하지만 딱히 수긍이 되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에서 한 캐릭터에 대한 배경이나 이야기를 에피소드 하나에 통째로 담는 것은 대표적으로 로스트(Lost)나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 등에서처럼 흔한 진행 방식이고, 아기자기하고 유니크한 동화 같은 무대 역시 이미 수많은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영화들, 예를 들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Grand Budapest Hotel)이나 문 라이즈 킹덤(Moonrise Kingdom), 혹은 팀 버튼(Tim Burton) 감독의 여러 영화들처럼 그다지 보기 힘든 장치인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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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게임들을 통한 살인 게임이라는 테마 역시 이 시리즈를 대성공하게 만든 특별함일 수는 없는 것이, 오징어 게임을 시청하는 미국인들의 리액션을 보면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그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게임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는 다소 혼란스러워하면서 어떤 게임인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장면들이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단지 이 게임들이 궁금해서 오징어 게임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오징어 게임은 이미 배틀 로얄 이후로 서양권에선 식상할 만큼 익숙한 장르이며 이야기 자체도 클리셰 덩어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익숙하고, 결과마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며, 인물이나 무대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현상’을 만들어 낼 만큼의 무언가가 있다고 보기는 힘든, 어떤 면에선 뻔하고 또 어떤 면으로는 식상한, 그래서 5점 만점에 4점 이상을 주기엔 ‘뭔가 꺼림칙한’, 전형적인 3.5점 정도의 시리즈라고 평가하고 싶다. 

신기함, 호기심 그리고 거부감 사이 
그렇다면 전 세계적인 오징어 게임 현상을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는 펜실베니아 대학의 교수인 샘 리차드 교수의 한 강의 동영상에서 정답 비슷한 것을 찾았다. 샘 교수는 한 강연에서 한류(Korean Wave)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재 한국이 위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다. 한 나라의 힘은 하드 파워(Hard Power)와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나눠볼 수 있다. 

하드 파워가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뜻한다면, 소프트 파워는 설득력(Persuation)을 뜻한다. 그리고 한국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어로 된 음악에 익숙하다. 일본어로 된 애니메이션에도 익숙하며 피자나 콜라, 파스타나 스시를 먹는 것에도 익숙하다. 

하지만 프랑스어로 된 랩 음악이나 러시안 헤비메탈 밴드의 음악, 인도의 전통 음악이나 아프리카 언어로 부르는 그들의 가요를 듣는 것은 신기함이나 호기심과는 별개로,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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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기형적으로 길게 만드는 액세서리를 착용​한 카렌족>

아프리카의 일부 부족에서는 피부에 상처를 내서 만든 흉터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동남아시아의 어느 부족은 긴 목을 아름다움으로 여겨 아기 때부터 목을 기형적으로 길게 만드는 액세서리를 착용하게 하는 문화에 대해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하게 여길 것이다.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징어 게임의 이 현상을 이 공식에 대입해보니, 나름대로 이래가 가는 구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꽤 최근의 언젠가부터, 이상할 정도로 세계는 한국에 설득당하고 있다. 

비빔밥은 20년 전에도 맛있었고 지금도 맛있지만, 그때는 우리가 “이거 맛있어요!!!!”라고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 맛있는 건강식이라도 띄워주고 있다. 

한국 음악은 예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지만, 예전에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눈에 불을 켜고 한국 음악을 파고 들고 있으며, 오래 전 한 방송에서 한국어를 “독일어와 비슷하게 둔탁하고 날카롭다”고 표현하던 것이, 지금은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듣기에 아름답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어째서 전에는 설득되지 않던 세계의 많은 사람이 지금은 달라졌는지, 또 그 변화를 만든 것은 정부의 지원인지 어떤 천재들의 등장인지,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왔고, 그 결과 지금 세계는 한국에, 한국 문화에 “설득되었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자막으로 즐긴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자막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은 더빙판으로 시청할 수도 있는데, 최근의 이슈 중 하나는, 오징어 게임의 영문 더빙판이 한국어판의 뉘앙스와 다른 부분이 많아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불평이다.

이 이슈는 한국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오징어 게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의 이슈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사건이 불과 1년 반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코로나로 세계가 잠시 멈춰있는 사이에 세계 문화의 이슈에는 대한민국이 당연한 듯 끼어있기 시작했고, 그 흐름은 코로나 시대의 막바지에도 여전해 보인다. 

우리가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기 시작해야 했던 2020년 초에 코로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 관료는 공식 석상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지금부터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아직은 기껏 해야 말로 떠들 뿐이지만, 이 마스크를 벗고 생활할 수 있는 그때가 되면, 그 몇 년 사이에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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