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진정한 나를 찾는 시간 > 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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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혼술, 진정한 나를 찾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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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 작성일 2021년 08월 30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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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딱히 잡아 놓은 저녁 약속은 없고 급번개 연락도 없다. 그런데 집에 그냥 들어가긴 좀 아쉽다. 혼자서 마시는 술이 당긴다. 나만 알고 있는 단골집에 쓱 들러 본다. 다행히 자리가 있다. 

 

일단 차가운 생맥주를 한잔 시킨다. 같이 내어주는 주전부리로 맥주를 마시며 ‘자 오늘은 어떤 안주를 먹을까’ 잠시 고민한다. 작은 메뉴를 하나 고르고 기다리는 동안 첫 잔을 거의 다 마시고 두 번째 잔을 주문한다. 음식이 나오면 맥주와 함께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다. 

 

두 번째 맥주를 다 마시고 주종을 바꿔본다. 그리고 식사가 될 만한 메뉴를 추가로 주문한다. 나름 안주와 주종의 궁합과 먹는 스피드를 맞추어 가며 혼자 즐긴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은 기분이 풀리고 기분이 좋은 날은 더 즐겁다. 1차에서 얼큰하게 취하면 집에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조금 아쉽다면 2차로 단골 바에 가서 나이트 캡(night cap)으로 칵테일이나 하드리쿼를 마신다.  

 

혼자 마신다고 다 같은 혼술이 아냐

사실 내가 혼술러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지는 않았다. “저는 혼자 술을 마십니다!”라고 적극적으로 알릴만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혼술을 한다고 밝혀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반응은 “왜 혼자 마셔?” 아니면 “날 부르지 그랬어”가 대부분이고 어쩌다 “누구랑 있었던 거야? 솔직히 불어”도 있다. 

 

대꾸하기가 다소 난처하다. 여전히 혼술러는 한국 사회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하고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하긴 나도 처음부터 혼술이 익숙했던 것은 아니니까 그들의 반응이 십분 이해가 간다. 

 

아, 여기서 말하는 혼술이란 집이나 편의점이나 공원에서 혼자 캔맥주를 따거나 소주를 따라 마시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가게에서 혼자 음식을 시켜서 술을 마시는 것을 말한다. 혼술을 할 때 가게에 가서 하느냐 개인의 공간에서 하느냐 하는 것은 확실히 레벨이 다른 이야기이다.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또 점심시간에 혼자서 국밥집에 앉아 밥을 먹는 행위와도 다르다. 인터넷에서 ‘혼밥 레벨 테스트’를 검색해보면 가장 마지막 단계인 9단계가 바로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최고 난이도의 혼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혼술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나름 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 잡은 거 같지만 혼자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는 것은 여전히 고난도의 행위이다. 우리나라에서 술과 밥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기는 하다. 혼밥과 혼술 문화가 발달한 일본과는 확연히 다르다. 

 

실제로 일본에 가보면 술집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꽤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 드라마인 ‘고독한 미식가’는 설정상 주인공이 술만 마시지 않을 뿐이지 그야말로 혼밥·혼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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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혼술남녀'중 갈무리>

 

첫 번째 관문, 가게 선정


사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상 정도 내공을 지닌 프로 혼밥·혼술러가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과 충족해야 할 조건들이 좀 있다. 점심때 그냥 훌쩍 국수 한 그릇을 시켜 먹는 정도의 혼밥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녁에 혈혈단신으로 술집에 들어가서 안주와 술을 시켜 먹는다는 건 익숙해지기 전에는 꽤 용기가 필요하다. 

 

일단 남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과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어색함을 스스로 깨뜨려야 한다. 고독함과 외로움을 기꺼이 즐길 마음을 먹어야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게의 선정도 매우 중요하다. 

 

적절한 가게를 찾아 놓으면 첫 혼술의 관문을 깨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너무 핫한 곳이어서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없는 곳이나 홀이 넓고 여러 명의 손님을 받아서 매출을 일으켜야 하는 곳에서는 아무래도 혼자 술을 마시기가 쉽진 않다. 

 

격식 있는 고급 레스토랑은 받아만 준다면 혼술을 하기에 최적의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혼자서는 예약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규모도 적당하고 손님 수도 적당한 가게가 아무래도 좋다. 미리 단골이 되어 놓는다면 혼자 가기 어려운 곳도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처음 가는 곳인데 전화를 해서 한 명 예약을 하거나 워크인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저 혼자인데요’ 라고 하면 가게 측에서도 좀 당황스러울 것이다. 카운터 석을 만들어 놓아서 1인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곳이라면 최적이다. 

 

카운터 석의 유무는 혼술러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아니면 아예 바 형태로 된 가게도 혼술러에게는 그만인 장소다.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어야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혼자 술과 음식을 시키기까지의 첫 관문을 용기를 내어 돌파했다면, 그다음에는 혼자서 먹고 마시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가 관건이다. 

 

사실 혼술을 진정으로 즐기려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초보 혼술러가 하는 것은 핸드폰이다. SNS를 훑어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아니면 넷플릭스로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 가끔 카톡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집에서 TV를 보면서 혼술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소가 술집이고 서빙을 받는다는 사실이 다를 뿐, 자기만의 시공간을 만드는 행위이다.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혼술이 더 즐거우려면 사실 일부러라도 오프라인 상태를 만드는 것이 좋다. 혼술을 하면서 핸드폰을 보지 않으면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하다. 

 

시간이 너무 안 가고 뻘쭘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너무 ‘나 혼자 이 상황을 즐기고 있어’라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도 별로 멋이 없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야말로 진정하게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처럼 혼자 즐기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몸에 밴 듯 자연스럽게. 혼자 내러티브를 속으로 읊으며 즐긴다. 허공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다.

 

음식이 맛있으면 혼자서 진실의 미간을 찌푸리기도 한다. 그게 누가 봐도 멋지고 본인도 즐겁다(사실 아무도 당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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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혼술남녀'중 갈무리>

 

에세이 한 권이면 OK

그런데 이 경지에 이르려면 꽤 오랜 기간의 혼술 경험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 끝판왕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두 가지 팁이 있다. 

일단 단골집에서 혼술을 하면 친해진 주인장이나 직원이 어느 정도 말동무를 해준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반칙이다. 진정한 혼술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같이 먹고 마시는 상대방과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니, 어느 정도 혼자 있는 무료함을 달래는 수준의 친밀한 대화라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주인장도 직원도 바쁘면 나 혼자 시간을 잘 보낼 필요가 있다. 

 

혹은 그런 대화가 불가능한 업장도 있다. 그럴 때를 위해 책을 가져가서 읽는다. 좀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막상 해보면 이게 꽤 괜찮다. 

 

술을 마시며 읽는 책이니 실용서는 너무 삭막하다. 혼술을 하면서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은 상상이 잘 안 간다. 인간미가 없지 않나. 너무 흥미진진한 소설도 어울리지 않는다. 

 

흠뻑 빠져드는 종류의 책은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음식과 술의 맛을 느끼기 힘들다. 가장 좋은 책은 역시 가벼운 에세이나 시집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사색을 하기도 좋다. 이따금 안주를 한 입 먹고 술을 한 모금 마시다가 책을 덮고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기기에도 그만이다.

 

주인장이 말을 걸거나 할 때 바로 책장을 덮고 대화를 하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다. 음식을 두 가지 이상 시키고 그사이에 잠깐의 틈이 생길 때의 무료함과 뻘쭘함을 메우기에도 좋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역시 경지에 이르면 그냥 누가 뭐래도 혼자 음식과 술을 즐기는 시간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된다. 그야말로 현실판 고독한 미식가가 되는 것이다.  

 

혼자여서 더 좋은

혼술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간관계 때문에 먹고 싶지도 않은 것을 먹을 필요가 없다. 나는 오늘 와인 비스트로에 앉아서 작은 타파스 메뉴와 시원하게 칠링된 샤도네이를 한 병 마시고 싶은데 무리를 따라 북적이는 삼겹살집에 갈 필요가 없다. 

 

반대로 내가 오늘 소박하게 술국에 소주를 한잔하고 싶은데 파스타를 먹고 싶은 상대를 굳이 설득할 필요도 없다. 또 대화에 몰두해야만 하는 상황 때문에 눈앞의 맛있는 음식들을 무슨 맛인지 음미할 틈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겨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내가 제일 아깝게 생각하는 것이 고급 스시집에서 스시를 음미하지 않는 상대방과 음식에 대해 감상할 틈도 없이 다른 이야기만 줄기차게 해야만 하는 식사 자리이다. 차라리 스시를 쥐어주는 쉐프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케를 홀짝거리면서 혼자 코스를 즐기는 것이 백만 배 낫다. 

 

또 평소 눈여겨 둔 신상 맛집이 있다면 정중히 혼자 예약이 가능한지를 묻고 훌쩍 가서 먹어 보기도 좋다. 사람들은 의외로 본인들의 활동영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매우 귀찮아한다. 

 

그들을 설득해서 저 멀리 다른 구에 있는 맛집을 찾아가려면 가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찾아간 집이 상대방의 입맛에 맞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혹독한 피드백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혼자 있기 싫어서 대충 아무나 사람들을 끌어모아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처럼 소모적인 것도 없다. 결국 남는 것은 외롭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는 기억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술이 좋은 것은 진정한 나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TV를 보며 배달음식에 맥주를 먹을 때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군중 속에서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는 경험은 각별하다. 혼자서 조용히 사색을 즐기며 이를 통해 정신적 충만함을 얻는다.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확고한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것도 큰 소득일 것이다.  그러니 용기 있는 당신, 혼술의 세계로 한 번 빠져보지 않으시렵니까?  ​ 

경력사항

  • 現 (주)코넥스솔루션 대표이사
  • 現 (주)유니페어 이사
  • 現 (주)링크인터내셔널 이사
  • youtube=풋티지브라더스(Footage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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