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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라멘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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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 작성일 2021년 11월 29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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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이란 음식을 처음 먹어 본 것은 대략 20여 년 전 대학생 때 갔던 일본에서였다. 

 

당시 숙소로 잡은 집 근처에 도저히 그냥 지나가기 힘든 냄새를 풍기는 실내 포장마차 같은 비주얼의 라멘집이 있었는데, 늦은 밤까지 항상 라멘을 먹는 사람들로 붐볐다. 

 

호기심에 며칠을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마음먹고 도전해본 그 라멘의 맛은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충격이었다. 

 

라멘은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 하고는 아예 다른 개념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진하고 기름지고 짠 국물에, 처음 먹어보는 식감의 면, 푸짐하게 올라가 있는 고명들. 

 

너무 오래 전이라 국물이며 면이며 고명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라멘이라는 음식의 거대하고도 복잡 미묘한 세계와 처음 조우한 강력한 경험으로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는 거의 매달 일본 출장을 가는 덕에, 라멘을 먹을 기회가 꽤 있었다. 

 

아직 한국에는 제대로 된 일본식 라멘이 소개되기 전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쉽게 정보를 검색할 수 없던 시절이라, 경험의 폭이 클 수는 없었다.

 

그저 TV나 잡지에 소개되었거나 현지인이 추천해 주는 곳을 가본다던지,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는 곳에 용감하게 들어가 보던지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회식자리에서 술과 안주만 먹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늦게까지 하는 라멘집에 들러서 라멘 한 그릇을 후루룩 먹는 것이 전형적인 일본 샐러리맨의 코스이다. 

 

우리나라는 해장을 다음날 아침이나 점심 때 하지만, 일본의 샐러리맨들은 술자리 끝에 하는 셈일 것이다. 나도 일본 아저씨들을 따라 저녁 술자리가 끝나면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라멘을 한 그릇씩 먹고는 했다.  

 

끊임없는 변주와 마니아들의 열광

라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결국 중국의 면요리가 일본에 전해져서 일본 고유의 스타일로 발전된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짜장면의 역사와 매우 흡사하다. 중국 본토에서는 우리나라 스타일의 짜장면을 팔지 않듯, 일본 스타일의 라멘도 중국에서는 먹을 수 없다. 

 

제조 방식이나 가게가 돌아가는 구조, 그리고 소비 행태 등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설렁탕이나 곰탕 같은 국밥 종류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지만 라멘만의 독특한 점을 하나 꼽자면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가 힘든 ‘엄청난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라멘의 정의를 ‘중화면(간수-알칼리성 염수용액을 써서 반죽한 면)과 스프를 주재료로, 다양한 고명을 올린 면 요리’ 정도로 포괄적으로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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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라소바​>

 

이 마저도 최근에는 ‘아부라소바(국물 없이 비벼 먹는 라멘의 한 종류)’나 ‘츠케멘(좀 더 진하고 양이 적은 국물에 따로 나오는 면을 찍어 먹는 종류)’ 같은 장르가 퍼지면서 정의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예외가 생기고 있다. 

 

일단 일본 내 각 지방과 도시를 대표하는 스타일의 라멘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도 가게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창작성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맛의 라멘이 존재한다. 

 

국물을 내는 재료도 가게마다 천차만별이고, 면의 굵기와 생김새와 삶기 정도도 다 다르다. 

 

분파나 계열은 있지만, 본인이 배운 스타일을 전통적으로 고수하기보다는 또 그 다음 세대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재미있는 음식이다.

 

아직도 일본의 라멘이라는 음식 장르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세상에 라멘처럼 현재진행형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음식 종류가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 라멘은 무수한 마니아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일본에는 라멘만 다루는 잡지도 있고, 라멘을 주제로 한 만화 작품들도 나오고, 전국의 유명 라멘집을 순례하는 TV 예능 프로그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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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헤즈(Ramen Head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한장면>

 

일본에서 유명한 라멘집에 줄을 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광경이다. 

 

유명 라멘집의 사장들 자체가 매우 매니악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광기와도 같은 라멘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라멘헤즈(Ramen Head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그런 문화를 꽤 잘 이해할 수가 있다. 

 

츠케멘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얻고 지금은 전국에 여러 점포를 내고 있는 ‘토미타(とみ田)’의 대표인 토미타 오사무(富田治)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되는데, 이 사람은 그야말로 하루 종일 라멘만 생각하고 가게에서 직접 라멘을 만들고 집에 가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라멘 서적을 보다가 자고 심지어 휴일에는 다른 라멘집에 가서 라멘을 먹는다.

 

라멘 쉐프라는 것을 떠나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점심 경에 오픈하는 토미타 본점에는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선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에 이 일본식 라멘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였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일본식 라멘을 소개한 곳이라고 하면 홍대에서 시작한 ‘하카타 분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04년에 오픈했으니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곳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3대 라멘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하카타 지방 스타일의 라멘을 내는 곳인데, 돼지뼈를 탁하게 우려낸 돈코츠 스프에 소면처럼 얇은 면이 특징이다.

 

하카타 분코의 성공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식 라멘을 먹을 수 있는 기반이 생겨난 셈이다.

 

하지만 성공한 곳을 빠르게 벤치마킹하는 국내 시장의 특성상 한국 라멘집 스프의 대부분이 한동안 돈코츠 베이스에 머무르게 된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지 싶다.   

 

일본식 라멘은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들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음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약간 더 이른 시기에 한국에 소개된 베트남식 쌀국수는 금세 인기를 끌며 퍼져 나간 반면에, 라멘은 그렇게까지 대중적으로 환영받는 음식은 아닌 듯했다.

 

감자탕이나 설렁탕 같은 음식을 좋아하니까 라멘도 분명 금방 인기를 끌 법했는데, 양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쌀국수에 비해서 프랜차이즈화하기 힘든 부분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데, 라멘이라는 음식은 제대로 만들려고 하면 엄청난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하카타 분코를 따라 흉내를 낸 돈코츠 라멘(기성 스프와 면을 조합해서 만드는)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맛 자체가 없는 것이 대중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와중에 새로운 스타일의 라멘을 시도하는 라멘집들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대부분 홍대와 합정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에서 라멘을 배워온 사장님도 있었고, 일본인이 가게를 내기도 했다. 홍대 인근 지역은 점점 더 치열한 라멘 격전지가 되어 갔고, 현재에도 이것은 진행형이다. 

 

한국에서 라멘이라는 음식은 발전을 거듭하고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가게들이 한 지역에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는 것도 라멘이 대중적으로 퍼지지 않고 매니악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껍질을 깨고 나오다

최근 들어 홍대를 벗어나 다양한 지역에 라멘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돈코츠 일변도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상당히 새로운 시도를 하는 라멘집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주목을 많이 받는 곳은 홍대 인근을 벗어난 서울의 여러 지역에 속속들이 오픈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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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모코시의 ‘토리파이탄'라멘​ photo fukuoka-now>

 

요즘 새로운 맛집들이 오픈하는 핫플레이스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삼각지 근처의 ‘하나모코시’라는 라멘집은 ‘토리파이탄(鶏白湯)’이라는 탁하고 진한 닭육수를 기본으로 하는 스타일을 한국에 소개했다. 

 

돼지를 스프의 주재료로 사용하는 곳이 많은 국내 라멘집들 사이에서 상당히 신선한 시도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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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멘텐’ 자료출처=naver blog​'sky8454'>​


명동의 ‘멘텐’이나 뚝섬역의 ‘라멘 오야지’같은 곳은 맑은 닭육수를 베이스로 한 쇼유(간장)맛의 라멘을 내는 곳인데, 근처에 서식하는 라멘 팬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강남 유행의 중심인 압구정동에 라멘집이 두 군데나 오픈했다.

 

‘센자이료쿠(잠재력이라는 뜻)’라는 라멘집은 예전 경리단길에서 ‘장진우길’이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장진우 사단 소속의 쉐프가 오픈한 집이다. 

 

특이하게도 ‘요코하마 이에케 라멘(横浜家系ラーメン)’의 장르적 특징을 응용한 라멘을 만든다.

 

이곳은 가오픈 첫날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낳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리카마(鳥釜)’라는 라멘집이 또 오픈했다. 

 

이곳은 예전 ‘토리준’의 쉐프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컴백해서 오픈했다는 곳인데 역시 첫날부터 긴 웨이팅 행렬이 생겼다. 상호명 그대로(토리는 닭의 일본어) 닭 육수를 맑게 낸 국물이 특징이다. 

 

쇼유(간장)맛과 시오(소금)맛이 있는데, 손님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시오 라멘을 내어 주는 곳이 생겼다는 것이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시오 라멘은 일본에서도 호불호가 꽤 갈리는 라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시오 라멘이 등장한다는 것은 한국 내 일본 라멘의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모두모두 업그레이드

라멘을 즐기는 손님들의 수준도 상당해졌다. 

 

손님들이 맛을 분석하고 즐기는 측면에서는 이것이 또 한국의 평양냉면하고도 흡사한 부분이 있는데, SNS 상에서 라멘에 대한 시식평을 올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여느 일본의 라멘 마니아 못지않다.

 

그들도 그들이지만, 일반인들 역시도 라멘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아진 듯하다. 

 

새로 생기는 라멘집들에 긴 웨이팅 행렬이 생기는 것이 그 반증이라고 본다. 공급과 수요가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늘어나는 형상이다. 

 

일본 라멘이 한국에 소개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는데, 드디어 라멘의 르네상스와도 같은 시대가 도래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무언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빠르고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는 한국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또 어떤 라멘집이 속속 오픈할까 기대가 된다. 

 

이것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는, 새롭게 오픈하는 라멘집들은 아마도 현재 존재하는 스타일과는 다른 맛을 보여주는 곳이 많아질 듯해서이다. 

 

일본의 라멘이 현재진행형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며 엄청나게 다양한 스타일과 맛을 보여주고 있듯이, 한국에서의 라멘도 어느 시점에서는 일본 본토 맛의 복제를 떠나 나름의 분파를 만들면서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라멘이라는 음식이 가진 특징이니까. 라멘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반가운 현상이다.

 

다만 너무 자주 먹지 않도록 주의하긴 해야 할 것 같다. 금방 군살이 붙어버리는 나이가 되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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