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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먹고 쓰는 것들에 대하여/강원식

그래도 난 오늘 새 타이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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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 (kws@cnxsol.com) | 작성일 2020년 08월 31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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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타이를 대충 세어보니 대략 200개쯤 된다. 본격적으로 타이를 사 모으기 시작한 것이 십여 년 전 부터니까 일 년에 평균 20개씩은 산 셈이다. 물론 대부분이 슈트를 지금보다 훨씬 자주 입던 시기에 중점적으로 사들였던 타이들이기는 하다. 

 

‘사도 사도 끝이 없는 물건’

실은 타이라는 물건이 다 똑같은 것 같지만, 은근히 시대별로 유행도 많이 타고 클래식 복식 안에서의 구분에 따라 종류도 나뉜다. 집에 있는 200개의 타이들도 참 여러 가지 종류의 것들이 섞여 있다. 그 중 당연히 더 자주 매는 것이 있고, 가끔 가다 특정한 룩을 위해 매는 것이 있고, 이제는 매지 않는 것도 많지만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대부분을 그냥 가지고 있다. 

 

비슷한 개념의 물건으로는 티셔츠나 모자가 있지 않나 싶다. 필요에 의해 사서 쓰는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숫자 이상은 필요가 없고, 피상적으로 바라보면 다 그게 그거처럼 보이는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 세계에 깊이 들어가서 애호가의 입장이 되면 이게 ‘사도 사도 끝이 없는 물건’인 것이다. 

 

아마 2020년 지구에 사는 남자들에게 타이라는 물건은 집 안 공구함 안에 들어있는 드라이버나 망치 같은 수준이 아닐까 싶다. 어쩌다가 필요할 때 써야만 하는 구비품, 그런데 일부 남자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이기도 하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타이라는 물건은 대략 열 개 내외면 아주 충분한 숫자가 아닐까. 직업적으로 슈트를 매일 입는 남자들도 사실 스무 개에서 서른 개 정도의 타이면 족하지 않나 싶다. 분명 그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다고 느낄 것이지만.  

 

‘한 눈에 딱 알아본다’

확실히 타이는 이제 극단적인 생필품이거나, 또는 극단적인 기호품의 영역에 들어가는 듯싶다. 지금은 대다수 직장이 드레스코드로 캐주얼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타이란 물건은 데일리 유즈의 필요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 매일매일 어제와 다른 타이를 골라 매는 의무도 즐거움도 사라진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타이는 그저 어쩌다가 필요에 의해 매는 거의 도구에 가까운 생필품이거나 아주 드물게 멋을 한껏 부리기 위해 매는 기호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무직에 종사하는 모든 남자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슈트를 입고 타이를 매야만 하던 시절에는 타이가 남자의 경제적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도구로써의 패션 아이템이었다. 

 

시계와 벨트 버클과 구두도 물론 그렇고, 알아보는 사람들에게는 슈트와 셔츠도 입은 사람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브이존에 딱 자리 잡은 타이만큼 한 눈에 척하고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은 없었다. 그래서 특유의 프린트로 브랜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페라가모’나 ‘에르메스’의 타이가 성공한 남자의 상징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던 시기가 있었다. 

 

한 눈에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타이를 매지 못하는, 또는 매지 않는 남자들에게는 타이가 그저 한 때 유행에 따라 누군가가(대개는 여자 친구나 와이프다) 골라주거나, 매장에서 추천하는 것을 매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패션업계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 경멸해 마지않던, 그 유래와 족보를 찾기 힘든 금속사를 넣어 짠 번쩍이는 타이며, 대검 끝에 브랜드 로고 모양의 금속 장식물이 대롱대롱 달린 타이를 많은 남성들이 매고 있었던 것이 그 반증일 것이다. 깃에 큐브를 박아 넣은 셔츠와 세트로 그런 타이들을 매던 남자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타이의 유행도 사실은 ‘한 눈에 딱 알아본다’라는 목적을 내포하고 있는 점에서는 명품 브랜드의 타이를 매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2010년도를 기점으로 남성복이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재조명되는 시기가 있었다. 피티 워모라는 남성복 전시회를 누비는 한국 바이어들이 태동하고, 소위 명품 브랜드가 아닌, 클라시코 이탈리아(피렌체에서 결성된 이태리 고급 클래식 남성복 제조업체들의 컨소시엄)계열의 남성복 브랜드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타이라는 물건도 비로소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는 공급자와 소비자가 생겨났다. 타이의 소재, 메이킹, 슈트와 셔츠의 장르와 계열에 따라 달라지는 타이의 종류, 타이의 컬러와 무늬 매칭 방법(브랜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로고나 프린트가 아닌) 등이 타이를 고르는 기준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클래식한 스타일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몸에 잘 붙는 이태리 스타일의 슈트를 갖춰 입고, 브라운 옥스포드 구두를 신고, 와이드 스프레드 컬러 셔츠에 멋들어지게 타이를 매고 가슴에 화룡점정으로 포켓스퀘어를 꼽았다. 남성복 신에는 크나큰 복음이었다. 타이는 이제 비로소 단순히 브랜드나 유행을 과시하고 반영하는 물건이 아니라, 전체적인 룩 안에서 조화로운 역할을 담당하는 물건으로 대접을 잘 받기 시작하는 듯싶었다. 원색의 동물무늬가 프린트된 명품 브랜드의 타이가 자취를 슬슬 감추고, 질 좋은 실크나 캐시미어로 만든 감색 솔리드 타이가 더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시기였다. 

 

사라져 버린 타이와 문화적 담론

그러나 머지않아 회사의 드레스코드는 캐주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무려 삼성그룹이 노타이에 캐주얼 착장을 선언하고, 뒤를 이어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뒤를 따랐다. 클래식 유행이 가져온 남성복 시장의 복음이 금세 자취를 감췄다. 타이의 수요가 급속도로 줄어든 것이다. 타이 자체를 맬 일이 없으니 그에 따른 문화적 담론과 유행도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단지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했다. 이웃나라 일본은 ‘쿨 비즈’라는 정부 주도 캠페인으로 노타이 비즈니스 캐주얼 착장을 권장했고 국민들도 호응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슈트와 타이가 아닌 청바지에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터틀넥 스웨터를 입는 아이코닉한 CEO 룩을 만들어 냈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는 슈트를 입지 않고 공식석상에 나갔다가 뭇매를 맞은 뒤로는 슈트를 차려입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똑같은 회색 티셔츠가 걸린 그의 옷장 사진이 화제에 오르며 매일 같은 티셔츠를 입는 그의 태도가 더 ‘쿨하다’는 인식이 커져 버렸다.  

 

나 자신도 한참 클래식한 슈트를 입으며 매일같이 타이를 매던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캐주얼한 차림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특성상 일반 직장인 남성보다 좀 더 멋을 내기 위한 슈트 차림을 할 기회가 많고, 운영하는 브랜드 때문에도 슈트를 입고 타이를 맬 일이 많지만 확실히 빈도수는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과감하게, 재미있게, 그리고 인문학적 취향을 담아 

지금 가지고 있는 200 여개의 타이라면, 평생을 매도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를 사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시즌마다 마음을 건드리는 타이를 만나면 사고야 만다. 가지고 있는 슈트와 셔츠를 생각하며 타이를 고르는 것처럼 즐거운 일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참 타이를 사 모을 때에 비해서는 훨씬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나름의 몇 가지 원칙도 생겼다.

 

타이는 기본적으로 꼭 갖추어야 할 타이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오래오래 쓸 물건을 장만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좋은 것을 산다. 감색 솔리드 타이는 실크, 캐시미어, 니트로 된 것을 갖추면 사실 거의 대부분의 슈트에 매치시킬 수가 있다. 타이의 생명은 매듭이고, 원단과 메이킹이 좋은 타이가 매듭이 잘 매진다.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타이에 새겨진 무늬 따위보다 타이 자체의 품질로 타이를 맨 사람의 수준을 가늠한다. 그리고 이런 타이는 거의 평생을 맬 수 있다. 

 

그 다음 여러 가지 무늬가 있는 타이는 사실 무한대에 가까운 선택지가 있다. 도트, 스트라이프, 문양, 그림 등. 여기에 발을 들여서 길을 잃어버리면 금세 옷장에 몇 백 개의 타이가 생기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개중에는 분명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무늬도 존재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타이의 무늬라는 것은 은근히 유행을 타고 시대성을 반영하기도 해서, 아무리 새 시즌에 나온 새로운 무늬들을 사들여봤자 몇 번 매지 못하고 금세 철이 지난 느낌에 잘 매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실천하는 방법이 시즌 초에 나온 맘에 드는 무늬들을 몇 개 골라 구입해서 잘 매다가, 그 중 싫증이 난 것들은 중고매물로 처분하고 앞으로도 계속 잘 맬 것 같은 것들은 남기고 있다. 그래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상당한 양의 타이가 집에 쌓이기 때문에 무늬가 있는 타이는 적당히 즐기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타이의 폭이 8cm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폭 8cm에 길이 147cm의 사이즈 스펙이 황금률로 정착될 듯하다. 타이의 폭은 대개 10년 정도의 주기로, 슈트의 실루엣에 따른 라펠의 폭과 더불어 좁아졌다 넓어지기를 반복해 왔다. 7cm 정도로 좁은 폭의 타이는 주로 60년대 미국 스타일을 하고 싶을 때 활용하고, 8cm는 클래식한 슈트를 입을 때 맨다. 8cm가 넘어가는 타이는 너무 넓고 드라마틱한 느낌이라 아마 앞으로 유행이 온다고 해도 사지는 않을 듯하다. 타이의 폭이 9cm가 되면 라펠도 그에 따라 넓어 질 텐데, 라펠을 강조한 슈트는 그다지 입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타이를 매는 일이 없어지고 타이를 맨 남자를 볼 일도 많이 없어졌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큰 흐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분명 좀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기고, 빳빳하게 다린 셔츠를 입고, 단단하게 매듭이 지어진 타이를 맨 남자들의 댄디한 차림은 일상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출근길에 타이를 살 수 있게 아침 6시 30분에 문을 여는 나폴리의 전설적 타이 전문점 ‘E.마리넬라’는 아직도 그 영업시간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 아침에 들러 그날 맬 타이를 사가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마는, 타이를 사는 행위의 낭만을 상징적으로 지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매일같이 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오히려 조금 더 과감하게, 조금 더 재미있게, 조금 더 인문학적 취향을 담은 타이를 골라서 맘에 드는 셔츠와 재킷에 매는 즐거움을 누리기에는 더 좋지 않을까. ​ 

경력사항

  • 現 (주)코넥스솔루션 대표이사
  • 現 (주)유니페어 이사
  • 現 (주)링크인터내셔널 이사
  • youtube=풋티지브라더스(Footage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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