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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다움의 역습] 변화하는 한국식 바디 포지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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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아영 한나 마케팅 팀장 (akffjq07@naver.com) | 작성일 2021년 05월 31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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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흥미롭게 봤던 영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필자는 잡다하게 영화를 보는 편이라 여러 영화들이 기억에 남는데 그 중 하나가 ‘왕의 남자’다. 마지막 줄타기 장면이 이 영화의 압권으로 손꼽히지만, 이 영화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떨어져도 죽지 않을 정도로 줄을 튕기며 살 수도 있지만, 죽을 정도로 높이 점프했다 자칫 잘못하면 땅바닥에 그대로 추락할지도 모르는 그런 긴장감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인생 가운데에서도 이런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직까지 줄에서 점프할 실력은 되지 않아 걷기만 하는데도 그렇게 어렵다. 한 발자국 떼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와중에 줄은 계속 흔들리고, 중심을 잡은 것 같다가도 다음 발자국을 내딛기가 어려운 상황들이 이어지니 말이다.

 

사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나도 다른 기고자 분들처럼 있어 보이게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글을 쓰다가 몇 번을 뒤엎었다. 줄에서 걷지도 못하면서 무슨 점프하는 척을 하려고 할까. 그래서 읽어주시는 분들께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고자 한다.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캠페인

지난 글에도 적었지만 나는 조금 평범하지 않은 기업에 다니고 있다. 의약외품을 다루는 회사인데 본사는 한국이고 꽤 많은 해외 파트너들에게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소규모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까.

 

그 덕에 해외 시장의 변화와 니즈를 그래도 꽤 빠르게 접하고 있는 편이다.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를 알게 된 것도 해외 파트너들 덕분이다. 

 

바디 포지티브는 세계뿐 아니라 한국의 소비 성향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해외 언더웨어 시장 역시 바디 포지티브를 내세운 브랜드들이 크게 성장해 대충 잡아도 몇 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한국의 신생 업체들도 꽤 성공적으로 흐름을 따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더웨어 브랜드들 대부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체형들의 모델들로 촬영을 진행하려고 하고, 결과물도 포토샵을 크게 거치지 않은 원래 상태 그대로의 사진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언더웨어뿐 아니라 여성이 메인 타깃인 위생용품과 생리팬티를 비롯한 기능성 언더웨어 등에도 그대로 요구되고 있다.

 

와당탕퉁탕 첫 촬영

필자의 회사가 기능성 언더웨어를 준비한 것은 2018년 초였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한국에서 바디 포지티브가 그렇게 영향력이 크지 않은 시기였던 듯하다.

 

그 때는 입사 초기여서인지 아니면 문화 사대주의자였든지 해외 파트너들의 의견이 모두 옳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에 최대한 부합하게 준비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모델들로 촬영을 많이 진행하고 있으니 이 과도기에 더 앞서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한국에서, 심지어 외국인 모델들로 찾는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고달팠다. 많은 금액을 투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무식하게 부딪혀보는 것밖에 없었다.

 

모델 에이전시에 일일이 연락해 외국인 모델 리스트를 받고, 촬영본은 언제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또 몇 개 국가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모델마다 모두 체크해야 했다. 계약 기간과 활용 국가에 따라 비용이 2배 이상으로 붙는데 모델에 따라 금액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렇게 예산의 중간 타협점을 찾아 모델 후보군을 선정한다 해도 해외 파트너들에 의해 키의 곡식마냥 리스트가 탈탈 털렸다. 체형, 이미지 등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그나마 남아있던 모델들이 대부분 떨어져 나가고, 되돌이표처럼 에이전시에 처음부터 다시 연락을 해야 했다.

 

그렇게 겨우 모델을 정하고 사진사와 스튜디오까지 선정하고 나면 이미 몇 천 만원은 쉽게 소진된 상태다. 만약 조금 유명한 모델들을 쓰려고 하면 아마 이 금액으로는 턱도 없었을 것이다.

 

궁여지책 해외 촬영

우당탕하고 진행된 첫 번째 촬영은 다행히 선방이었지만, 촬영을 진행할 때마다 이렇게 많은 준비 기간과 촬영비가 들어가야 한다면 지속적인 신제품 출시와 사진 변경은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찾아낸 새로운 방안이 촬영 전체를 해외에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역시 무식하게 인터넷에서 검색 발품을 판 결과, 다행히도 해외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에이전시와 연락이 닿았다. 견적과 모델리스트를 받아보니 한국에서 진행하는 것보다 모델 풀도 훨씬 넓고 금액대도 낮았다.

 

궁여지책으로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더 맞는 방법이었다. 첫 촬영보다 모델 인원수를 늘리고 이틀로 나눠서 찍어도 한국에서 진행한 가격의 60% 정도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촬영 시간의 밤낮이 바뀌어서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꼬박 새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어떻게 찍히는지 바로 확인하거나 수정을 요청하기도 어렵다.

 

촬영 중간에는 운빨을 믿으며 진행하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으나, 같이 밤새우는 에이전시에 미안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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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포지티브는 세계뿐 아니라 한국의 소비 성향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업체들도 흐름을 따라 성장해가고 있다.>

 

한국식 바디 포지티브

그래도 그렇게 마련된 결과물은 꽤 성공적으로 보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외국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해외 레퍼런스를 긁어모아 찍어도 해외 파트너 분들이 항상 ‘아시아 느낌이 난다’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정말 외국 느낌이 나는 듯했다.

 

한국에서도 이 글로벌한 느낌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며 나름 마음을 놓고 신상품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 안일한 착각이었다.

 

지난 글에 적었던 여성 트렁크 팬티의 펀딩을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담당자가 메일을 하나 보냈는데 소비자들이 서양인 피팅모델 기용이 잦은 국산 브랜드에 불만을 가진다는 기사였다.

 

메일 말미엔 현재 준비된 콘텐츠를 모두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겨우 겨우 촬영했고, 이제 뚜껑을 열려는 상황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렇게 열심히 고른 모델들 중 백인과 흑인은 사라지고 아시아, 라틴계 모델들도 머리가 쑹덩 잘려 목 아래부터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변화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메인 타깃에게 여성의 신체와 가장 밀접하게 닿는 상품을 팔려고 하면서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못난 브랜드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의도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난 그저 옛날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국다움이 세계다움이 아니듯 세계다움 역시 한국다움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의 바디 포지티브는 한국만의 방향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고, 자신이 속한 시장에 따라 그 흐름의 속도나 방향은 예상을 벗어날 수도 있다.

 

내 회사는 삼성이 아닌데

출장이나 여행으로 외국에 가면 꽤 자주 삼성의 광고를 볼 수 있는데 삼성의 광고와 애플의 광고에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애플 광고는 한국에서 본 것과 똑같은데 반해 삼성의 광고는 국가에 따라 그 스타일이나 내용이 모두 다르다.

 

웬만한 나라에서 모두 먹히는 광고를 만드는 것도, 각 나라에 맞는 광고를 만드는 노력도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대단한 일이다.

 

다만 내가 속한 시장에서는 삼성처럼 세계다운 것과 한국다운 것을 별도로 만드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만약 내 회사가 삼성이라면 광고나 이미지들을 각 나라에 맞춰 n개로 만들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한국과 글로벌 중 어느 것 하나를 놓치거나 최악의 상황엔 둘 다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초반에 말했듯 솔직한 심정을 적어보았다. 어쩌면 너무 쉽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냐며, 혹은 그것도 몰랐냐며 혀를 차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피어스가 네오 앞에 내민 두 색의 약처럼 어떤 선택에 의해 앞으로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기에 한 걸음 내밀기가 쉽지가 않다. 

 

글을 읽는 모두에게 묻고 싶다. 어떤 것이 지혜로운 선택일까. ​ 

경력사항

  • 現) 한나 마케팅컨텐츠팀 팀장
  • 現) 지앤이헬스케어 마케팅컨텐츠팀 팀장
  • 컨텐츠 기획, 영상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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