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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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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훈 동인인터내셔날 ‘2XU’ 본부장 (jihpark07@gmail.com) | 작성일 2021년 07월 12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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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넘은 오만이 무르익으면 재앙과 파멸의 열매를 맺게 하고 하염없는 눈물을 거둬들이는 법!”

-아이스킬로스 作 ‘페르시아 사람들’ 중에서

 

브랜드는 신화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합니다. 프로덕트는 실재하지만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우리가 가지는 영감,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소유했을 때 브랜드가 만들어주는 위상, 구매욕을 자극하는 소비자 저마다의 가치와 꿈은 현실 세계에 오브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브랜드와 신화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소비자와 사람들이 믿게 하고 나아가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메커니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브랜드의 탄생과 흥망성쇠

과거에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브랜드를 특정 인격체로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브랜드에는 그 브랜드를 소비하는 특정 타깃 오디언스가 있고 그 타깃 오디언스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 ‘예상 소비자 시나리오 구축법’을 통해 시각화됐습니다.

 

여러 가지 조합을 통해 상상해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 아웃도어 브랜드를 만든다면 브랜드 페르소나로 40대 가장을 생각해 봅니다.

 

‘전문직 종사자이면서 연 수입은 1억 원 정도, 초등학생 아이가 하나 있고 이번에 산 차는 지프 글래디에이터,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데 최근에는 캠핑에 관심이 커져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즐기며 즐겨 입는 옷은 ㅇㅇ이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브랜드는 브랜드 페르소나의 인격을 그대로 물려받게 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리스 로마의 신들은 신이라 할지라도 인간과 똑같이 사랑하고 질투하며 분노와 후회 그리고 용서라는 인격을 다양한 스토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교적 친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인격을 빌려오는 것은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쉬운 방법입니다. 

 

새벽의 여신이 카메라 이름이 된 EOS, 스타벅스의 세이렌, 에르메스, 승리의 여신 니케(로마 신화에서는 빅토리아입니다), 아마존 등 브랜드명을 직접적으로 신들의 이름에서 빌려 오기도 하지만 전령의 신으로 하늘과 땅, 지하 세계까지 소식을 전했던 에르메스의 날개 달린 모자 페타소스를 로고로 사용한 네이버와 같은 은유적인 표현도 있습니다.

 

네이버가 포털 사이트로서 수많은 정보를 빠르고 쉽게 탐험한다는 뜻과 에르메스의 속도로 다양한 소식을 전한다는 뜻을 표현하고자 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 재미있는 점은 브랜드의 탄생과 흥망성쇠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러티브와 아주 유사한 문학적 구조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문학적 구조로 자주 쓰이는 것은 ‘Hubris Ate Nemesis Cycle’이라는 구조입니다. 

 

Hubris는 교만함, 오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 오만함과 교만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가진 탁월함(Arete)에서 기인합니다. 탁월함이란 태생적으로 타고난 운명이나 재주, 갑작스레 모은 재물이나 명예를 의미합니다. 

 

이런 탁월함이 인간을 오만하게 만드는 것인데요, 오만한 인간은 늘 그릇된 행동(Ate)을 합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릇된 행동의 결과로 복수의 여신(Nemesis)이 주는 파멸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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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농락 그리고 파멸

‘Hubris Ate Nemesis Cycle’의 구조를 따른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 아라크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리디아의 아라크네는 테피스트리를 아주 잘했는데 그 솜씨(Arete, 탁월함)가 너무 출중하여 스스로 자신의 솜씨가 아테나 여신보다 뛰어나다고 망발(Hubris, 오만)을 합니다. 

 

전쟁의 여신이기도 하지만 공예의 여신이기도 한 아테나는 할머니로 변하여 신을 모독하지 말라고 아라크네를 타이르지만 아라크네는 아테나를 무시하고 직조 시합을 벌이기에 이릅니다. 

 

이미 그릇된 행동을 한 아라크네는 심지어 자신의 베틀에 올림푸스 신들의 애정행각을 수놓으며 신들을 농락(Ate, 그릇된 행동)했습니다. 

 

백조로 변하여 레다를 유혹하는 제우스, 황소로 변하여 여성을 겁탈하는 포세이돈 등 아라크네의 테피스트리는 사실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했지만 여신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어(Nemesis, 파멸) 버렸습니다. 

 

참고로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그림 ‘실 잣는 여인들’은 아라크네와 노파로 변한 아테나의 베틀 짜기 시합(베틀? 전쟁인가요?ㅋㅋ)을 그리고 있습니다. 노파의 물레바퀴가 살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테나의 물레가 그만큼 빨리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노파의 다리가 얼굴과 다르게 희고 고운 것은 노파가 변장한 아테나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후경의 테피스트리는 제우스의 애정행각을 그린 티치아노의 그림에서 따왔는데 후경의 테피스트리에 투구를 쓴 여인도 아테나입니다. 

 

성공한 브랜드가 빠지기 쉬운 오류

이렇듯 아라크네의 창조성은 사라지고 먹고살기 위해 줄을 쳐야 하는 거미의 신세가 되어 버린 아라크네의 이야기. 탁월한 디자인이나 품질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오만과 교만에 빠져 이익과 성장에만 급급한 나머지 소비자를 농락하고 결국 나락에 떨어진 브랜드. 

 

가끔 우리는 신화에서 브랜드 이름만 빌려올 일이 아니라 신화가 들려주는 내러티브를 통해 이미 성공한 브랜드가 어떤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꼭 배워야 할 듯합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도 역사를 이끌어 가는 창조적인 소수들이 빠지기 쉬운 대표적인 오류로 ‘휴브리스(hubris)’를 지적했습니다.​ 

경력사항

  • 現) 동인인터내셔날 2XU 사업부장
  • 前) 더네이처홀딩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CD
  • 前) 네파 상품기획 팀장/유럽프로젝트장
  • 前) 인디에프 ‘프레디’ 상품기획 팀장
  • 前) 데상트 ‘르꼬끄 스포르티브’ 상품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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